학교 선생님도 과외를 할 수 있다?!
시각,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던 아이가 인생의 스승을 만나 기적처럼 말문이 트이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미국의 작가이자 교육자, 연설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널리 알려진 ‘헬렌켈러’의 이야기이다.
훗날 두 사람이 만들어 낸 기적은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데 바로 <The Miacle Worker_미라클 워커>이다.
영화 초반, 빛과 소리를 잃은 헬렌켈러는 그저 울부짖고 부수는 아이로 표현된다.
그녀의 가정교사인 앤 설리번은 다른 감각을 일깨워 언어를 가르치려 노력하는데 아이와 몸싸움도 주저하지 않는다.
물이란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아이의 손바닥에 찬 물을 쏟아붓고 다른 손으로는 끊임없이 입 모양과 소리의 진동을 전한다.
마침내 수동 펌프 앞에서 차가운 물을 느끼며 헬렌켈러가 ‘Water(워터)‘를 외치는 순간 감동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비록 ‘워~워~’ 미완성 소리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아이가 세상과 다시 소통을 시작하는 소리였고 새로운 빛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은 헬렌켈러가 아니다.
‘미라클 워커’를 직역하면 ‘기적을 만드는 사람’.
헬렌켈러는 생전 한 사람을 가리켜 ‘내 인생을 만들어낸 사람’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미라클 워커>는 그녀의 스승 앤 설리번과 또 다른 누군가의 참스승에게 헌정하는 영화이다.
어쩌면 나의 아이도 소통이 차단된 세상에 홀로 갇혀버린 건 아닐까.
투덜이 스머프로 변해버린 나의 아홉 살 집착남을 보며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선생님을 구하지 못한 채 아빠와 단둘이 남은 아이는 방과 후 종종 아파트 로비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로비에 비치된 소파에서 뒹굴거리거나 책을 읽으며 한 시간 남짓 아빠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때마다 로비에 근무하는 베트남 이모님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간식도 챙겨주고 대답 없는 아이의 말동무가 되어 주셨다고 했다.
또 몇 번이나 그 모습을 지켜본 한국 이웃들도 남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선생님을 구하는 방법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실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에게 과외수업을 요청해 보라는 것.
보통은 참관수업 때 눈여겨본 선생님께 연락처를 따로 물어 협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특히 베트남 국적의 선생님들의 경우 부수입으로 과외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단 베트남에서도 같은 교과목을 과외하는 건 불법이라고 하지만 국제학교에서는 그마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교과 과정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아이의 학교 적응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25살의 미스 설리번
수소문 끝에 한 선생님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 국적의 그녀는 한 국제학교에서 보조교사로 근무 중인 선생님이었다.
25살의 앳된 선생님과의 첫 대면에서 아이는 등을 돌렸다고 했다.
책을 눈앞으로 들이밀면 빙그르 돌아 봄을 돌리고 또다시 책을 앞에 놓으면 빙그르 돌고.
제자리 술래잡기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더랬다.
수업을 참관하던 남편은 또다시 좌절하고 말았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은 아이를 맡아주시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책이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영유아 수준부터 다시 시작해 볼게요.“
다음날 그녀는 특별한 술래잡기를 준비해 왔다.
몇몇 단어카드의 뜻을 알려준 선생님은 집안 곳곳 카드를 숨긴 뒤, 다시 단어를 불러주며 아이게게 찾아오도록 했다.
술래잡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맞춤형 교육이었다.
영어를 증오하던 아이는 점점 영단어 놀이에 빠져들었다.
놀이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그녀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주제로 수업을 병행했다.
때때로 아이가 영어를 극도로 거부하는 날에는 그냥 아이를 곁에서 지켜봤다.
25살의 젊은 선생님을 우리는 ’미스 설리번‘이라 부르기로 했다.
<미라클 워커>, 기적을 만드는 사람.
어쩌면 나의 아홉 살 집착남도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