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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가 - 브라이언 리 오말리

by 코르테오

주인공 스콧은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백수다. 여주인공 라모나는 여러 남자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스콧을 만났다.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전 남자 친구들을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지만 이겨냄으로써 얻는 보상이나 깨달음도 적다. 영웅적 서사 구조의 왕도적인 맛은 있지만 개연성이란 없다. 속된 말로 병맛이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스콧 필그림 시리즈’는 내 20대 초반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처받기 싫었고, 재미를 찾아 떠나고, 적당히만 하고 싶었다. 책의 주인공처럼 나 또한 고등학생에서 대학교 시절엔 노는 것에 초점이 맞춰줬다. 흥미 있는 것에는 큰 열정을 보이지만, 아닌 것에는 열정을 보이진 않았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들이는 일은 크게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앞에 다가오는 시간을 소비하는 데 급급했다. 학과 축제에 참석하고, 동아리 공연에 시간을 쏟고, 만화나 게임을 보며 하루를 즐겼다. 특히 브라이언 오말리의 작품 속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읽었다.


부모님과 누나는 자격증이나, 영어 시험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라고 했지만 치기 어린 나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느꼈다. 굳이 대기업에 갈 생각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일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졸업은 다가왔지만, 학업에만 열중하고 다른 걸 신경 쓰지 않은 나는 얼떨결에 스타트업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에 던져진 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서류상으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청년이었다. 나는 계속 회피했다. 문제를 타개해야 했지만 나는 외면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광주에 오고 나서도 나는 딱히 노력하지 않았다. ‘스콧 필그림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침대에 누워 게임만 해댈 뿐이었다. 회피만 하면 이 고통을 마주 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새로운 장소에서 나는 사회에 나가면서 이러한 도피하는 성격은 많이 벗어났다.


현재의 나는 그때 비해서 조금 성장한 것 같다. 그럼에도 어른이 아닌 어린이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이만 먹고 예전 시간과 문화를 추억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꼰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은 그 시절만의 감성이 있어서였다. 다시 펼쳐본 ‘스콧 필그림 시리즈’는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한 가지 더 눈에 띄었다. 그것은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메시지를 발견해서였다.


마지막 남자 친구를 물리친 스콧은 라모나와 다시 재결합하려 한다. 라모나는 이전 같지 않은 상황에 걱정하고, 제자리걸음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스콧은 다정한 한마디를 한다’


‘연습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야.’


그렇다. 방황하고, 발전이 없어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계속 도전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빠져 귀찮음에 안주하고, 시간에 휩쓸리면 우물 안 개구리는 점프하지 못하게 된다. 나 또한 움직이기 싫던 시간에서 먼지를 털고 일어나게 되었다. 세상은 좀 더 움직이고, 나아가는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이 함께라면 모든 것을 이겨내기 충분해진다. 스콧과 라모나가 엔딩에서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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