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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맞이하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by 코르테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하시야마는 집을 나서기 전 하는 행동이 있다. 새벽녘이 걷히지 않는 약간은 어둑한 하늘을 보며 웃는다. 일반적인 일상이었던 일주일 내내 그랬었고, 한 번의 큰 파동이 있었던 다음 일주일에도 같은 행동을 했다. 무엇이 그를 웃게 하는 걸까? 예전에 나도 아침에 눈을 뜨고 회사에 일을 하러 가는 게 지겹고, 눈살이 찌푸릴 정도로 아침이 힘들었었다. 또 하루가 시작이다. 지겨운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만 많았었다.


이러한 생각이 변하게 된 건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세상을 달리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루에 대한 편견을 타파한 제일 첫 가르침은 언제나 같은 하루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회사에 다녔지만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기.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너무 간소화시켜 보고 있었던 나였었다. 출근할 때 겪는 상황들이 다르고, 내게 주어진 일들이 다 달랐고, 퇴근 후 내가 선택한 하루 마무리들. 미시적인 시선으로 본 하루는 언제나 개성이 넘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하루는 언제나 새로운 일들로 가득 차 보이게 되었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게 되었다. 니나 시몬의 노래 ‘Feeling Good’의 가사처럼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새로운 인생인 것이다.


두 번째 가르침은 내가 주어진 하루에 과몰입하지 말라는 거였다. 예전의 나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무조건 운동은 크로스핏해야 하고, 주말에는 무조건 나가야 하고, 내가 일하는 데 아무런 터치가 없어야 했다. 루틴은 많아졌지만 이걸 지켰을 때의 안도감이 있었다. 나름 하루를 보람차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무너졌을 때는 자존감이 확 내려갔다. 나의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한 규칙들이 어겨질수록 불만이 쌓여갔다. 왜 내겐 불운만 가득할까.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에 옥죄는 건 나였다는 걸 깨닫고 나니 족쇄가 풀린 느낌이었다. 루틴을 방해하는 위기는 불특정 한 시간에 다가올 수밖에 없는 거고, 그걸 이겨냈을 때 나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물론 아직은 내가 탄력 있게 받아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것이 내 하루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들이 많이 와서 내가 더 단단해지고 싶다.


마지막은 눈을 떠서 그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서행구간 선생님이 내게 질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하냐고. 나는 또 하루가 시작한다며 한숨을 쉰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내게 숙제를 내주셨다. 일주일간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 기도를 올리라고 하셨다. 의심이 가득한 숙제였지만 일주일을 해보고 나니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내가, 이 하루를 보내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잠을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뜰 수 있는 기적이 필요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감사 기도를 올리니 내가 겪는 이 시간이 모두 소중했다. 사실 완벽한 하루라는 건 없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가 기적이고, 이미 완벽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마법 같은 하루를 꿈꾼다. 부자 같은 삶, 재미가 넘치는 삶, 불운하지 않는 삶처럼 극적인 변화가 나의 행복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퍼펙트 데이즈의 하시야마는 되고 싶지 않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완벽한 하루를 보낸다. 그는 모든 하루가 같지 않고, 너무 과몰입하지 않으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해한다. 만약 그가 한 번이라도 지금의 삶에 불만이 있었다면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버지 회사에 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남루한 집에서 더러운 화장실 청소부의 하루를 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삶에 놓치고 싶지 않은 마법 같은 순간을 기록한다. 살아있는 마법, Magic Alive를 찾기보다는 마법 같은 삶, Magical Life 오늘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하루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나와 일맥상통한 것 같다. 그러기에 나도 그런 인식을 쓸쓸한 이들에게 노래하고 얘기해주고 싶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보며 웃어보자. 이 하루를 살 수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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