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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朱木)

나는 어떤 나무인가

by 코르테오

주목(朱木): 극음수이다가 양수, 성장 속도가 느리지만 장수, 다른 관목의 보호가 필요, 바둑판에 쓰임


스스로 모자란 게 있다는 걸 인지는 했다. 특히 사교성이나 사회성을 말이다. 부모님께서 늘 친구 좀 사귀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들 정도로 얘기를 하곤 하셨다.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절절매다가 그만두었다. 이런 거 없이도 인생 사는데 아무런 불편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 잘하면 되지. 인생은 독고다이와 같았다.


지나고 보니 그런 꽉 막힌 사고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우유부단하고, 예절이 부족하고, 현실을 잘 모르는 나이만 먹은 어린애였다. 눈치가 없다. 타인이 나를 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발가벗겨지고 나니 걱정이 쌓였다. 사람 고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해답은 오히려 가까운 데 있었다. 바로 서행구간이라는 책방에서였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서 서행구간에서 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좋은 분들과 함께하니 상대방과 대화하는 게 즐거워졌다. 모임을 주도하시는 선생님께서도 내게 부족한 예절을 알려주셔서 바로 고쳐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2년 그리고 지금까지 5년의 세월 동안 많은 인연들 덕에 이제야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 혼자서가 아닌 가족처럼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숲을 이루는 주목처럼.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주목은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다. 고요히 혼자 자랄 수는 있지만 장수를 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주변에 자신을 보호하고, 등을 대줄 수 있는 다른 관목이 필요하다. 다른 나무들의 도움을 받은 주목은 음수였던 자신을 양수로서 바꿔나간다. 마치 타인의 격려를 통해 변해가는 고독한 인간의 변화처럼 말이다. 그런 주목을 보니 참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롭고 고지식하게 어둠 속에서 살려다가 빛을 향해 손을 내민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동굴 바깥으로 나가는 나 자신처럼 말이다. 점차 사회에 뿌리를 내려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결국 사람은 사회와 등지고 살 수 없으며 서로의 등을 맞대며 살아가기에 음지에 고립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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