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집안일 얘기하지 마.’
누나의 불호령에 알았다고 답은 했지만, 이미 나는 벌거벗겨진 상태다. 나는 엄마를 잃어서 힘들었고, 누나의 모순적인 행동에 속앓이를 했고, 아버지와 마주하는 게 불편한 30대 청년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책방 선생님과 식구들은 다 알고 있다. 노출된 삶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마음속 응어리가 없어 후련하다. 겉으로 괜찮은 척한 지난날이 어리석다고 느낄 정도다. 약점 잡히지 마라. 누나가 내린 인생의 답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속얘기. 그것이 내가 사람을 아는 데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실 속얘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심지어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나의 아픔을 바로 터놓기 힘들다. 하지만 진실된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타인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려줄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행동과 글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를 감추면 고통을 소화하지 못하고, 변비처럼 끙끙 앓게 된다. 속앓이. 마음의 병은 행동의 제약을 만들고, 더 나아가 가면으로 점점 자아를 덮게 된다. 의도는 감추고 빙빙 도는 행동을 상대방 또한 느끼고, 마주하려 안 하게 된다.
때로는 왈칵 나의 마음을 온전히 쏟아야 한다. 주변 눈치가 보여도 해야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준다. 집안일, 가족애라는 암묵적 약속에 굴하지 않아야 한다. 가족은 가족이고, 나는 나로서 서야 한다. 나 또한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나는 정말 좋은 기회를 통해 속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나서 행동을 고쳐 나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런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곳들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우리로서 살 수 없음을 여실히 느끼는 현재이다.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는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이웃들이 모이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