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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01. 2022

골프공과 달걀

텐 바트의 사랑

  10월 말인데도 태국의 한 낮은 삼십오 도까지 오르는 무더위다. 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 운동하고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한낮에 낮잠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일상이다. 아침 운동 나갔다가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호수에 괴물체 같은 것이 보였다. 내륙이라 물개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고, 혹 악어? 물안개 탓에 정확히 보이진 않으나 움직임이 분명했다.

  사람 같기도 했다. 잘 못 본 것일까? 물 밖으로 목만 내민 채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태국이라 해도 이른 아침 물속은 차가 울 것이고. 목만 내민 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오후에 운동 나갔다가 그 장면을 또 목격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눈만 반짝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아침부터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변함없이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물속에 있어 묻질 못했다.

  티샷 한 볼이 실수하여 호수로 날아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소년은 빠르게 볼이 떨어진 곳으로 헤엄쳐 갔다. 몇 차례 잠수를 반복하더니 볼을 찾아 나왔다. 열 살 조금 넘은 듯 앳된 소년은 찾은 볼을 건네며 “텐 바트”라고 말했다. 우리 돈 400원이다. 그 소년은 호수에 들어간 공을 찾아 주고 돈을 받는 것이 생업이었다. 볼 찾기 쉬운 풀밭 같은 곳은 어른들이 미리 차지했고, 접근하지 못하고 위험한 호수가 소년의 구역이었다. 안쓰러워 이십 바트를 건네자 볼 하나를 더 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곳에 갈 때마다 호수로 볼을 처넣었다. 볼이 호수에 떨어지는 순간 소년의 눈은 반짝였고 옅은 미소를 보였다. 민첩하게 볼이 떨어진 위치를 향해 헤엄쳐 갔다. 잠시 후 소년이 찾아온 볼은 내 볼이 아니었다. 그를 위해 “오케이 마이 볼”이라 말하면 소년은 미소 지으며 좋아했다. 하루에 찾아주는 볼은 십여 개 정도라고 했다. 우리 돈 사천 원 정도가 그의 하루 수입이다.

  물에 퉁퉁 불은 손으로 건네주는 하얀 골프공이 어릴 적 어머니가 삶아주던 달걀 같이 느껴졌다. 차가운 호수 속에서 골프공을 찾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소년의 삶이 나의 어린 시절로 끌어드렸다.    

                                                     


  달걀은 우리 집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암탉 몇 마리가 낳은 달걀은 볏짚 꾸러미로 열 알씩 가지런히 포장되었다. 당시 달걀 한 개의 값이 태국 소년이 꺼내오는 골프공 한 개의 가치와 비슷했으리라.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면 어머니는 달걀 꾸러미 두세 줄을 머리에 이고 장을 보러 나갔다. 한 파수 동안 모아놓은 달걀이 장 볼 유일한 밑천이다. 어머니는 난전 바닥에 꾸러미를 내려놓고 흥정을 벌였다. 몇십 원이라도 더 받아볼 생각에 밀고 당기는 흥정을 벌이다 손님 놓치기 일쑤였다. 파장이 다 될 무렵에야 급하게 팔았다. 제값을 못 받은 것 같아 속상해하는 일이 장마다 반복됐다. 달걀 판 돈으로 양잿물과 사카린 같은 생필품을 샀다. 마지막으로 잊지 않고 사는 것이 하얀 십 리 사탕이다. 십 리를 가는 동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여 십 리 사탕이라 불렀다. 눈알처럼 하얗고 동그란 모양이라 눈깔사탕이라 부르기도 했다.

  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건 십 리 사탕의 달콤함이 더 컸다. 그걸 아시는 어머니는 우리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탕이 녹을세라 헌책 종이로 사랑을 담아 여러 겹 감싸 갖고 왔다. 사탕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어머니에게 묘기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사탕을 입안에서 양쪽으로 굴리며 볼을 불룩하게 솟았다 사라지는 모습을 어머니는 진짜 묘기를 보는 듯 진지하게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곤 했었다.

  귀한 달걀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두 번 있다. 봄, 가을 소풍날 삶은 달걀을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그날 말고도 할머니는 가끔 어머니 몰래 날달걀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뜨거운 밥 위에 노란 날달걀을 올린 다음 왜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볐다. 밥 온기로 반쯤 익은 날달걀 비빔밥 한 수저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간 보던 할머니는 딱 좋다며 먹으라 했다.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는 당부를 곁들였다. 어머니는 저녁나절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며 부족한 걸 용케 알았다. 달걀 꺼내 먹었냐고 물어도 할머니와 약속을 지키느라 모른다고 시치미 떼었다. 어머니는 장날까지 달걀 꾸러미를 채워야 한다며 닭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 ‘십리 사탕’ 사줘야 하니 몇 알 더 낳아야 한다.”

   


  태국 소년은 골프공 몇 개를 더 찾으려 잠수를 계속하고 있었다. 식구들과 먹을 저녁거리를 사 가지고 가기에 부족했나 보다. 비닐봉지에 담긴 쌀국수를 사서 집으로 향하는 소년과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십 리 사탕 사 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행복했던 것처럼 소년도 차가운 물속에서의 고통은 잊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행복할 거라 상상해 본다.    


  오늘도 호수를 향해 골프공 하나를 날려 보낸다.  ‘텐 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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