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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05. 2022

바지락

어머니는 붉은 갯골 긴 노을에 그리움만 남겨 놓았다

  썰물은 서해를 밀고 나가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갯벌을 꺼내놓았다. 끝에 걸린 석양을 한 동안 바라본다. 커다란 붉은 바퀴가 갯골 따라 긴 노을을 끌고 간다.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듯 긴 꼬리를 자르더니 불타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노을이 사라지고 암전 상태로 바뀌자 희미한 어머니 실루엣이 보였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갯벌에 간다며 분주하다. 보름이면 바닷물이 가장 멀리 빠져나가는 사리 때라 바지락 잡기에 좋은 날이다. 소쿠리, 호미, 자루를 챙기고 장화를 신었다. 십여 리를 걸어가 물때를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바닷가 사람들은 음력을 기준으로 생활한다. 들고나는 물때가 달(月)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만조 간조 시각은 물론 썰물과 밀물의 속도가 달의 변화와 함께한다. 보름과 그믐달 직후엔 ‘사리’, 상현과 하현일 때 ‘조금’이라 그에 맞춰 바다에 나갔다. 달의 삭(朔)과 망(望)에 따라 바닷물이 들고나는 속도를 열다섯 물로 나누어 그것에 맞춰 생활한다.

  낚시는 물이 들고나는 속도가 적당한 네 물이나 다섯 물, 조개잡이는 썰물이 가장 멀리 나가는 일곱물에서 아홉 물일 때 나간다. 어촌 사람들에게 물때는 삶의 시계다. 하루에 두 번 들고나는 간조와 만조에 맞추어 자연현상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다.      

                                             


  바지락은 칠팔 월 산란을 위해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오뉴월에 살을 꽉 채운다. 그때가 바지락 제철이다. 어머니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갯벌로 나갔다. 대천만(灣) 갯벌엔 바지락이 지천이다. 특별한 재주 없이도 갯벌을 뒤집기만 하면 채취할 수 있었다. 재수 좋은 날엔 낙지도 한두 마리 잡히고, 주먹만 한 백합 조개도 심심찮게 나왔다. 한나절 허리 구부리면 한 자루 거뜬히 채웠다.

  갯골에 물이 들기 시작하면 서둘러 갯벌을 나서야 한다. ‘사리’ 물때엔 어른 걸음보다 두세 배 빠르게 밀물이 들어와 금세 차오르기 때문이다. 더 잡으려 욕심 부리다간 밀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벌을 나와 제방 둑에 바지락 자루를 올려놓고 나서야 한숨을 돌린다. 장화에 묻은 벌을 씻어내고 나면 허기를 느낀다. 점심이라고 해야 개떡 두어 쪽이 전부다.

  바지락을 어찌나 많이 잡았는지 부축 없이는 자루를 머리에 올릴 수 없다. 목이 짓눌려 가누지 못할 정도다. 어머니는 집에 와서도 한동안 목을 움직이지 못했다. 통통하게 살 오른 바지락을 식구들에게 먹일 생각에 고통을 감내하며 쉼 없이 이고 왔다. 집에 도착해도 쉴 틈이 없다. 바지락을 함지박에 쏟아 넣고, 소금 한 사발 넣어 갯물과 유사하게 농도를 맞춘다. 바지락은 비좁은 자루 속에서 갈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앞 다퉈 혓바닥을 길게 뽑아 간물에 목을 축인다.

  저녁은 바지락 듬뿍 넣고 애호박 썰어 넣은 수제비다. 반찬이라고 해야 텃밭에서 갓 뽑아온 얼갈이배추를 우물에서 쓱싹 씻어, 붉은 고추 거칠게 갈아 넣고 멸치 액젓으로 간을 맞춘 얼갈이 겉절이다. 우윳빛 뽀얀 바지락 국물에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통통한 조갯살을 수제비와 함께 한입 가득 넣으면 그 맛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저 어머니 맛이다.       

                                                   


  별이 하나둘 빛나고 은하수 건너는 별똥별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마당 가운데 멍석을 펼쳤다. 그리곤 낮에 베어다 놓았던 쑥대로 멍석 귀퉁이에 모깃불을 피웠다. 풋풋한 쑥 향이 코끝에 스미고, 연기가 멍석 주변을 휘감으면 신기하게 모기가 사라졌다.

  때맞춰 어머니는 삶은 바지락을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아왔다. 큼직한 백합 조개도 들어있었는데 그건 아버지 몫이다. 양푼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갯벌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중에서 어머니가 들려주는 ‘콩쥐 팥쥐’ 이야기는 수십 번 들어도 처음 듣는 것 같고, 재미있었다. 어머니 다리를 베고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기별이 꿈속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멍석 주위에 달항아리를 업어놓은 듯 껍질 더미가 쌓여있었다.    

 

  칠흑 같은 갯벌 어둠 속으로 어머니의 바지락 수제비도, 콩쥐·팥쥐 이야기도 사라졌다. 꿈에서나 만나볼까! 어머니는 붉은 갯골 긴 노을에 그리움만 남겨 놓았다.(사진 : le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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