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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07. 2022

거시기

홍어 거시기는 왜 하찮은 본보기가 되었나

  홍어 거시기(X) 여?

  숫놈 중에서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녀석이 홍어 거시기다. 왜 그 녀석은 하찮게 대접받는 본보기가 되었을까? 오늘 지하철 타기가 좀 걸쩍지근하다. 하찮은 그 녀석 탓이다. 질긴 껍질만큼이나 지독한 냄새가 머릿속부터 속옷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도, 집에 가도 대접받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푸대접에도 독특한 맛을 잊지 못해 찾곤 하는 것이 홍어다.

  홍어는 목포 사람에겐 고향과 같다. 지독하리만치 퀴퀴한 냄새, 톡 쏘고 코 뻥 뚫리는 화끈한 맛이 바닷가 사람들의 강한 생활력과 잘 맞아떨어진다.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암모니아 발효 향이 맛 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남도 사람 몇몇이 모여 탁주 한 사발에 홍어 한 점 입에 물면 고향 떠난 지 수십 년 지났어도 사투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어메 겁나 맛나 브러이”  



  홍어를 처음 맛본 것은 칠십 년대 초 목포항 선창가 선술집에서다. 구질구질 비 내리는 부둣가는 비릿한 바다 내음에 생선부산물 썩는 냄새로 악취가 진동했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어구 더미 틈 사이를 지나 비 피할 곳을 찾았다. 서울서 흔한 왕대포 집은 보이지 않고 대신 붉은색으로 ‘홍탁’이라 쓴 선술집이 보였다. 유리에 홍탁이라 써 붙인 오래된 미닫이문을 밀치자. 술손님 풍파에 시달렸는지 ‘삐-이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순간,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 내장 썩는 냄새보다 독한 악취가 콧구멍을 파고들었다. 돌아 나오려는데 굵고 탁한 목소리가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어이 군인 아저씨! 들어 오랑께-”

  투박한 사투리만큼이나 걸걸한 홍탁 집 주모는 드럼통을 펴서 만든 둥근 탁자에 앉으란다. 습관적으로 찌그러진 양은 사발을 갖다 놓으며 “어떤 놈 줄까- 이-?”라며 주문을 재촉한다. 어떤 놈은 얼마만큼 삭힌 홍어를 의미한다는 걸 조금 후에야 알았다. 주방 입구에 조그만 항아리 일곱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삭힌 순서인 듯했다.

  “독한 놈 줄까 잉-?”하며 재차 물었다. 처음 먹어본다고 하자 더 묻지 않았다. 두 번째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가지런히 덮어놓은 볏짚을 헤친 후 홍어 날개 부위 한쪽을 꺼냈다. 잘 갈아놓은 회칼로 한 점 한 점 정성 들여 썰었다. 연한 분홍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홍어 살점의 은은한 빛깔은 냄새와 다르게 식욕을 자극했다. 색감의 유혹에 역한 냄새는 잠시 잊었다. 한 점 입에 넣고 질끈 씹는 순간 코를 뚫고 들어오는 암모니아 자극에 놀라고, 지독한 냄새에 놀라 엉겁결에 막걸리를 들이켰다. 신기하게도 역한 냄새는 사라지고 달착지근한 막걸리와 홍어의 발효 향이 혼합되어 독특한 맛이 느껴졌다.

  차가운 성질을 가진 알칼리성 홍어와 산성이지만 뜨거운 성질의 막걸리가 만나, 궁합을 이루며 입안에서 상큼한 맛을 창조해 낸 순간이었다. 홍어와의 첫 인연은 처음 만난 아가씨한테 애프터를 받은 듯 느낌이 좋았다.   

  


  탁주 몇 사발을 들이켜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왜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고 하는지 주모에게 물었다.

  “그 거는 두 개 달려 있는 디-, 아무 짝에 쓸모 없당 게, 저들 거시기할 때나 써 묵는 거지 아무나 잘라먹어도 홍어 팔아 먹는디 전혀 문제 없당 게 그래서 그러 능겨” 누가 잘라먹었는지 거시기는 없었다.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노인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군인들은 객지서 왔소-?” 홍탁 제대로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잘 삭힌 홍어 한 점을 입에 넣고 톡 쏘는 맛이 입안 전체를 휘감을 때 막걸리 한 모금 마시고 홍어와 막걸리를 동시에 씹으면 홍어의 역한 냄새를 막걸리가 잡아주며 중화시켜 달콤한 뒷맛이 나는데, 그 맛이 홍탁 맛이라 했다. 처음 느꼈던 묘한 맛이 제대로 된 홍탁 맛이었던 셈이다.

  그 독특한 맛에 길들여지고,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다시 찾게 되나 보다. 홍어를 홍탁으로 먹어도 좋지만, 묵은 김치를 물에 빨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기름기 적당한 돼지고기 수육과 삭힌 홍어 한 점을 켜켜이 쌓아 한입에 먹는 ‘삼합’은 홍어 요리 중 최고다.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과 묵은 김치의 깊은 맛, 홍어의 톡 쏘는 향이 어우러진 감칠맛은 또 다른 홍어의 세계다.

  홍탁에 반해 과음한 다음 날 숙취 해소는 홍어애탕으로 마무리한다. 된장을 적당히 풀어 묵은 김치와 홍어 뼈를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애를 넣고 한소끔 끓여내는 홍어애탕은 홍어 맛의 종결판이다. 뜨거운 국물과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이 더욱 강해져 입안에서 코로 스며드는 순간, 장에 남아있던 숙취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느낌이다. 홍어애탕을 먹어보기 전에는 홍어를 말하지 말라고 그곳 사람들은 말한다.      

  

  가락동 어시장에 들러 홍어 물건(?)을 찾아보려 두리번거렸다. “뭘 찾으시는데요?” 생선가게 주인이 묻는 말에 당황하여 얼떨결에 “거시기 찾는데요.”라고 말해버렸다.

  “뭔 거시기요?”  

거시기 뭐더라…!  얼버무리다 도망치듯 생선가게를 나왔다.(사진/le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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