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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11. 2022

두 번째 결혼반지

그녀에게 두 번째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다.

  결혼을 약속했으나 빈 털털이였다. 신혼 셋방부터 스스로 장만해야 했던 처지라 결혼반지 마련은 사치였다. 십여만 원의 월급을 쪼개 결혼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녹록 치 안았다.

 부모 도움을 받는 친구들은 결혼반지로 다이아몬드 5부, 형편이 좀 어려워도 3부 반지를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세방을 얻고 나니 예식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비용도 부족했던 터라 다이아몬드 자체가 나에겐 꿈이었다.

  수중에 가진 거라곤 한 달 치 월급과 보너스로 받은 이십여 만원이 전부였다. 식장 비용은 축의금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함을 보내는 것이 문제였다. 신부 측 일가친척이 다 모여, 함을 받을 텐데 예물 한 가지도 들어있지 않은 함을 받으며 수군댈 일이 걱정이다.

  그녀가 묘수를 알려주었다. 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어떠냐고 했다. 광채 더 좋은 ‘큐빅’ 이란 것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도 모른다며 걱정하지 마란다. 시장통 금은방에서 진짜 뺨칠 모조 다이아몬드 반지를 준비했다. 광채도 디자인도 진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짝퉁이라는 것에 진심을 담을 수 없는 한계만 빼면 반지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모조 다이아몬드 반지를 혼수로 보내는 미안함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이십 년 후에 캐럿급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미안함을 덜었다.

  반지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며 결혼 준비에 동분서주했다. 냉장고는 큼직한 이백 리터짜리로 하고, TV는 컬러가 좋다는 아남 17인치, 세탁기는 완전 자동 손빨래로 대신하기로 했다며 즐거워한다. 그릇 종류는 남대문, 침구는 동대문 시장이 싸다며 주말마다 이곳저곳 다녔다. 문제는 장롱이었다. 부엌 딸린 조그만 셋방은 장롱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버텼다. 대신 철제 캐비닛 한 개는 받아주는 것으로 퉁 쳤다.

    


  신혼여행은 무리해서 제주도로 갔다.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늘에 있는 신들이 지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기대하며 결정했다. 생애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소인들만이 살 것 같은 조그만 세상이 보였다. 우리가 장만한 신혼 방도 하늘에서 보니 결코 조그만 것이 아니라며 호들갑이다. 녹색, 붉은색, 회색의 조그만 지붕들 구불구불한 도로며 나지막하게 보이는 산들. 하늘에 사는 신들은 인간 세상을 바라볼 때 이렇듯 조그만 존재로 보일 것이니 신을 위대하게 생각되나 보다. 비행시간이 너무 짧다며 몇 바퀴 더 돌다 착륙하면 좋겠다며 아쉬워한다.

  열심히 일하여 일 년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태워 주겠다고 약속했다. 돌아올 땐 여행비를 줄이기 위해 카페리를 타고 목포로 나왔다. 뱃멀미 심하게 하는 아내에게 벌써 입덧하냐며 놀렸지만, 비행기로 돌아오지 못한 미안함이 내내 찜찜했다.     

 신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났다. 딸 아들 키우고, 직장생활에 얽매여 삶을 돌아볼 겨를 없이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그냥 지나갔다. 일 년에 한 번 비행기를 태워 주겠다는 약속은 까마득히 잊었다. 아내도 잊었는지 아니면 삶에 묻어 두었는지 한 번도 비행기 타고 여행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내는 모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았다. 가짜 반지에 사랑의 의미를 두지 않는 아내를 보면서 진정한 의미가 담긴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로 주리라 다짐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 몰래 적금을 들었다. 결혼 이십 주년이 되던 해, 종로에서 보석상 하는 친구에게 최상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문해 놓았다. 가짜 반지의 사연을 곁들여 부탁했던 터라 좋은 반지를 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1.5캐럿 최상급 반지를 구했다고 연락이 왔다. 커팅, 컬러가 완벽한 ‘하트 앤 애로우(Heart & Arrow)’ 가 또렷이 보이는 최상의 명품이란다.

  결혼 20주년 기념일에 자녀를 모아놓고 깜짝 선물을 공개했다. 결혼식 때 형편이 어려워 가짜 반지를 해 주었던 서글픈 사연을 딸 아들에게 말해주고, 두 번째 결혼반지를 아내에게 끼워주었다. 아내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즘은 일 년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태워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이행 중이다. 비행시간이 짧아 아쉬웠던 제주행 비행시간을 추억하며, 유럽으로 미주로 매년 한두 차례 여행을 다닌다. 아내도 많이 변했다. 비행기 오래 타는 것이 힘들다며 비즈니스 타고 다니잖다.

  아내는 첫 번째 결혼반지를 버리지 못했다. 광채가 사라진 큐빅 반지를 간혹 꺼내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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