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금(通禁)
온 나라가 정지된 시간이 있었다.
‘웨-에-엥-’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다. 자정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통행금지 신호다. 1961년부터 들었던 익숙한 소리라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진 이유 불문 코 온 국민은 통행을 금지해야 했다. 신명 난 건 쥐, 고양이 들이다. 82년까지 안보, 치안 유지 이유로 계속됐다. 좋은 점도 있었다. 휴식 없이 밤낮으로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공장 노동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 퍼마시던 술꾼…, 그들에게 귀가하여 휴식을, 잠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제도 역할이었다. 사회 전반으론 시간 개념이 정착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를 위해 오포(午砲)라 칭하던 사이렌이 정오와 자정 하루에 두 번 전국에 울려 퍼졌다.
만약 통금을 어긴다면?
골목골목 설치된 방범초소 통과가 관건이다. 방범초소는 전시 주민통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헌병이 배치되어 시민을 통제하는 지점이다. 평시에 방범대원이 근무하며 치안을 유지했다. 통금 위반자는 방범대원에게 파출소로 연행되어 유치장 행이다. 방범대원 권력은 막강했다. 통근 시간대 경찰관 한 명과 동행하며 치안 담당이 임무다. 통금 위반자에게 공권력이 작용한다. 술집 종업원, 고주망태 술꾼, 공장 야간근로자 힘없는 시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새벽 네 시가 지나면 파출소 유치장은 그들이 한데 엉켜 난장판이다. 술 취한 자, 억울한 자 통금 앞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닭장차’에 실려 즉결심판에 넘겨지지 않으려 천태만상 애걸복걸 현상이 벌어진다. 새벽에 일 나가야 한다는 생계 구걸 형, 오늘 처음이니 봐 달라는 애걸 형, 내가 누군 줄 아느냐는 허풍쟁이 형…. 파출소장 권한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통금 중에도 젊음을 발산했던 적이 많았다. 명동에서 고주망태. 버스 막차 떠난 지 오래고, 통금시간 전에 미아리까지 가기엔 불가능했다. 최후 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통금시간이 넘어도 차고로 들어가는 택시는 방범초소에서 어느 정도 통과시킨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승차 손님은 단속대상이다. 미아리 차고로 들어가는 택시 운전사와 흥정을 잘해야 한다. 운전사도 차고 방향 마지막 손님이 봉이란 걸 안다. 택시 트렁크 속에 숨어서 가겠다고 했다. 손가락 두 개를 펼친다. “따불” 택시비는 두 배다. ‘따따불’ 아닌 게 다행이다. 명동에서 미아리까지 삼십여 분. 트렁크 속에서 동면(冬眠)하는 곰 자세로 웅크린 채 누워 가야 한다. 관건은 미아리 고개 검문소 통과다. 빠르게 달려가던 택시가 정차했다. 누군가 운전사에게 말을 건다. 검문소인듯하다.
“어이 운전사 양반 통금 위반이야. 즉결 넘겨야겠네.” 트렁크 열어 보랄까 봐 숨이 멎고, 오금이 저렸다. 극도 긴장 탓인지? 막걸리 가스가 차오르는지? 아랫배가 땅기고 방광이 부풀어 올라 지릴 지경이다.
기사가 얼마를 건네주었는지? 오늘만 봐줄 테니 통과하란다. 파출소 유치장 행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좁은 트렁크 속 웅크린 자세도 동면 곰의 편안함으로 느껴졌다. 택시에서 내리는 즉시 지퍼를 내렸다. “아-흐- 살 것 같네.” 성공 무용담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그 후에도 몇 번 트렁크 동면 기법을 활용했다.
통금 탓에 사랑 경험도 했다. 오월 교내축제에서 여학생을 소개받았다. 4인조 그룹미팅에서다. 난 남학생 중에서 가장 꾀죄죄한 편이라 간택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은 멋진 청바지, 점퍼 등으로 최대한 멋을 부리고 나왔다. 난 사실 창피한 생각에 주눅 들어 있었다.
반전이 일어났다. 가장 예쁘고 깔끔한 여학생이 나를 지목했다. 자신감이 생기고 그 학생을 위해 미팅에서 당당함을 보여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일었다. 수시 만나는 관계로 발전했고, 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동지 관계로 발전했다.
어느 여름날. 경춘선 열차를 타고 대성리역에서 내려 강변 유원지로 향했다. 둘이서만. 한강의 아름다운 강변은 시간을 잡아먹고 우리만 남겨놓았다. 그곳에도 통금은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여학생과 달리 난 걱정은커녕 이런 기회를 기대했다는 말이 진심이다. 서둘러 민박집을 찾았다. 주머니 사정을 알고 있었던 듯. 주인은 당연한 듯 방 한 칸만 안내했다. 방구석에 앉은뱅이책상, 그 위에 비교적 깨끗한 이불 한 채와 베개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시골집 뒷방 같았다. 강변 쪽으로 한지 바른 격자무늬 여닫이창이 있었다. 퀴퀴한 냄새를 빼려고 창문을 열었다. 강변 갈대의 노래가 들리고, 어둠을 뚫고 춤사위도 아른거렸다. 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온 듯한 민박집 분위기가 두근거림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통금 사이렌 소리가 방안의 어색한 침묵을 깨웠다.
통금제도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것으로 긴 시간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그만 이불 하나에 의지해야 하는 난감함을 이야기로 해결할 순 없었다. 영화 대사처럼 이불 가운데 경계선을 정하고 반반 나누어 자기로 했다. 예민해진 긴장감 탓일까 둘 다 잠이 오지 않았다. 경계선이 부실한 탓에 손끝이 부딪치고, 종아리가 엉키는 몇 차례 위반이 있었다. 위반이 반복될수록 키득거림으로 변질되었다. 그도 내도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던 처지라 부모에게 걱정 끼칠 일 없다며 또 키득거렸다. 첫차 운행 시간까지 민박집 목단꽃무늬 벽지 같은 추억을 남겼다.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