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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31. 2022

문(門)

삶에는 경계와 문이 존재한다.

  문, 문, 문… 

  삶에는 항상 문이 존재했다. 새로운 만남에도 경계가 존재하고 문이 있었다.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대가를 지급하고, 때론 고개를 숙이기도 해야 했다. 

  문과의 첫 만남은 어머니 뱃속을 나올 때였다. 어머니는 내가 세상과 마주치는 첫 관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산통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문을 경계로 다름이 존재함을 인식한 건 어릴 적 일이다. 사립문을 들어서면 어머니가 있고, 나서면 어머니와 멀어진다는 걸 알았다. 방문을 경계로 안에는 온기가 밖에는 냉기가 상반되게 존재하는 것도 알았다. 같은 문이라도 때에 따라 마주침이 달랐다. 봄 다르고 겨울이 달랐다. 햇빛도, 바람도 매번 달랐다. 따스하고 춥고, 눈부시도록 밝고 흐리기도 했다. 어떤 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라지고, 인생도 달라졌다. 

  같은 마을에 또래 다섯 명이 살았다. 세 명은 읍내 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두 명은 생업의 길로 나섰다. 오십 년 후, 각기 다른 문을 택했던 다섯 명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대학 문을 선택했던 한 명은 고위 공직자로, 다른 두 명은 사기업 간부가 되었다. 생업의 문을 택했던 한 명은 공사현장을 전전하며 고생 끝에 건설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고향에 남아 농사짓던 한 명은 삼십 대 초반 삶을 비관하여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이런 말도 있다. 이민 갈 때 공항에 마중 나오는 이가 세탁소 주인이면 세탁소 하게 되고, 식당 하는 이가 나오면 식당 하게 된단다. 누가 어떤 문으로 인도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문이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경계적, 영역적 요소들과 공존하며 소통하려 했다. 차단하려는 경계나 영역이 있는 곳에는 역설적으로 뚫으려는 문이 존재했다. 물리적 측면에서도 공간적 영역을 이루는 경계와 그곳에 이르기 위한 통로로 문이 있었다. 성을 방어하려 성벽이 있고 그곳에 들어가려 성문이 있다. 집도 마찬가지다. 외부와 차단하려 담장을 만들고, 소통하려 대문을 만든다. 영역과 경계가 단절이라면 문은 소통이다.

  인간관계적 측면에서도 다름을 구분 지으려 영역을 만든다. 같은 성씨끼리 종친회, 학교별 동문회, 회사별 사우회 심지어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동호회를 만든다. 문학에서도 시, 소설, 수필 등 장르를 구분 짓고. 미술도 정물화, 풍경화, 구상, 비구상 등으로 영역을 만든다. 

  동물들도 살기 위해 영역을 만들고, 살아남기 위해 타 영역에 들어가려 죽음도 불사한다. 경계와 문은 생존을 위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우리에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을 통과하려면 상응한 조치가 필요하다. 시험을 통과하거나 자격증이 필요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돈이나 노동을 대가로 제공하기도 해야 한다. 특허권, 지적 재산권과 같이 법률로 막아놓은 경우에도 정한 조건에 맞춰야 한다.   

  


  안보견학을 갔다가 산 밑을 뚫어 만든 거대한 대피소를 본 적이 있다. 전쟁을 대비한 시설이란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육중한 철문을 통과해야 했다. 철문의 두께가 오십 센티미터 정도로 무게만도 수 톤은 됨직하다. 전쟁 포화 속에서 삶과 죽음을 경계 지으려면 이 정도 육중한 문이 필요한가 보다. 얻어지는 대가가 클수록 힘들고 어려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삶을 돌아봤다. 진학부터 취직까지 시험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했다. 무리한 도전으로 실패도 경험했다. 승진에 누락하고, 아파트 청약에서 탈락도 했다. 부딪치고, 경쟁하고 때론 싸우며 살아왔다. 삶이란 구중궁궐 속 구중심처를 찾아가는 문을 통과하는 여정인 듯하다. 몇 개의 문을 더 통과해야 할지! 마지막 문에 도달하는 것이 두렵다.    


  얼마 전, 친구가 마지막 문에 들어갔다. 화장장 소각로 문에 들어간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한 됫박도 안 되는 뼛가루로 변해 나왔다. 구십 킬로그램 거구가 마지막 문을 통과하자 그리 가벼워졌다. 그는 삶이란 이리 가벼운 것이니 모든 걸 내려놓고 가볍게 살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첫 문을 어머니가 열어주었던 것처럼 마지막 문 앞에 어머니가 마중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아들아! 사느라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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