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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Feb 28. 2022

불 춤

아궁이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불꽃 축제다.

  아궁이 속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장작의 불꽃축제다. 춤에 심취된 불꽃은 ‘탁-탁’ 소리를 내기도, 춤사위에 지친 듯 보글보글 거품도 뱉어낸다. 활활 타오르는 춤사위 속심을 들여다본다. 한을 녹여내는 듯 이글거리다 때론 강렬하게, 때론 하늘거리는 춤가락을 보이기도 한다. 

  지친 듯 불꽃이 잦아들면 장작 한 토막을 던져 넣는다. 꺼져가던 잔불이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불티를 날린다. 순간 불꽃놀이가 펼쳐 저 아궁이 속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불꽃놀이를 끝내고 나면 새 장작은 연기를 피워 1막이 끝났음을 알린다. 

  암전 후 불티가 새 장작을 먹어치우기 시작하면 서서히 연기가 사라지고 2막 춤판이 시작된다. 그 아름다운 불춤에 심취해 볼이 불그스레 물들어 갔다.                                                

  군불 때던 생소나무 가지의 매캐한 훈연의 고통이나 아름다운 불춤은 추억으로 만 남았다. 웃풍에 겹겹이 옷을 껴입을 일도 없고, 보일러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아파트의 편리한 삶에서 아궁이를 잊고 살았다.



  쉰 살이 되던 해 장작불의 추억을 되살려보기로 했다. 아궁이가 있는 집, 불춤 추는 무희들이 다가와 볼에 입맞춤하는 따스함을 느끼며 차를 마시는 행복을 짓기로 했다. 

  현대식 건축에 아궁이를 설치할 방법을 건축사에게 의뢰했다. 거실에 아궁이 설치하는 방법이 고향 집 군불 때던 방법에 머물러 아이디어가 생각나질 않았다. 혁신적인 발상을 해도 도시 건물에 아궁이를 설치하기엔 실현 불가한 방법뿐이다. 건물 맨 상층에 짓는 주택이라 난관이 많았다. 장작을 쌓아놓을 장소며, 장작 패는 도끼질은 어디서 할 것이고, 타고 남은 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건축사의 부정적 질문에 뾰족한 답이 없었다. 

  파리 여행 중 보았던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 여러 개의 굴뚝 생각이 났다. 벽난로 굴뚝이었다. 그 들이 아파트에 벽난로를 설치했다면 방법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들도 아파트에서 장작 패는 일은 할 수 없었을 테니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거실 구석에 벽난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벽난로 관련 자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매립형과 노출형 중에서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아내 의견에 따라 열효율은 다소 떨어지나 미관상 아름다운 매립형으로 결정했다. 비용은 마감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고가의 벽난로도 있었다. 이백 년 동안 벽난로만을 생산해 온 프랑스 스프라 제품을 선택했다. 

  완공도 되기 전에 숲에 사는 사람처럼 장작 팰 준비도 마쳤다. 도끼도 사고, 통나무를 절단할 전기톱도 장만했다. 정작 핵심인 장작을 구할 길이 막막했다. 시골이라면 뒷산에서 통나무 몇 도막은 구해 올 수 있지만. 도시에서 장작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재소에서 목재를 생산하고 남은 자투리를 사 와야 할지, 건물 철거 폐목재를 대용으로 써야 할지 난감했다. 수소문 끝에 참나무 한 트럭을 구했다. 크레인으로 참나무를 옥상으로 올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 공간을 마련하고 구조설계를 반영하여 안전상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옥상에서 장작을 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난제를 커다란 벽난로 입이 해결해 주었다. 입을 쩍 벌리면 웬만한 통나무는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밀레의 「장작 패는 사람」에 나오는 것과 같은 근육질을 자랑할 멋진 도끼질의 꿈만 포기하면 완벽한 준비다. 겨울이 오기 전, 통나무 절단 작업을 끝내느라 주말이면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옥상을 점령했다. 난로에 넣을 수 있도록 서너 뼘 길이로 잘라 양지 바른쪽에 차곡차곡 쌓았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장작더미는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을 부드럽게 바꿔놓았다. 

  절단된 나무토막은 나이테를 끊고, 살을 쪼개는 아픔을 감내하며 지난 세월과 단절하려는 듯 건조되면서 틈을 만들었다. 나이 어린 가장자리 나이테를 먼저 끊어내고 수십 년 된 속심 나이테만은 마지막까지 지켜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강렬한 햇빛은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갈라진 틈새는 장작더미에 문양을 그려 넣은 듯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비가 오면 갈라진 틈새에 물을 머금어 색상 톤을 변화시켜 생명을 잉태하는 듯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눈이 쌓이면 솜이불을 덮은 듯 포근함으로 휴식을 취했다.    

                                                      


  거실에 찬기가 스며들기 시작하면 벽난로에선 불꽃 춤판이 벌어진다. 그럴 때면 난로 앞은 아고라로 변했다. 붉은 카펫 위에 에스프레소 커피 향이 감돌고, 은박지로 감싼 고구마가 난로에서 익어갔다. 군불 아궁이 불꽃이 구들장을 달구었다면 벽난로 불꽃은 거실 공기를 덥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장작이 타면서 ‘탁-탁’ 소리를 내고, 보글보글 거품을 품어내는 것이나 이글거리는 불꽃도 어릴 적 아궁이를 닮았다. 밤늦도록 참나무 춘향에 취해 아고라엔 이야기꽃이 끊이질 않았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이면 불꽃도 힘을 잃어갔다. 단단하고 육중한 참나무 토막을 한 줌의 재로 만들 만큼 강렬했던 불꽃이었다. 새 장작을 던져주면 굶주린 용이 이글거리는 불을 뿜으며 달려들어 삼켜버릴 것 같은 기세로 옮겨 붙던 불꽃이었다. 그랬던 불꽃이 장작 먹이를 중단하자 급격히 쇠퇴해 갔다. 

  한쪽에선 몸을 태워 재를 만들고 뜨거운 열기를 감싸 안는다. 최소량의 산소를 소비하며 오랫동안 불씨를 살려두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새 장작이 들어올 때 살아나기 위한 연명 조치다. 성질 급한 몇몇은 숨이 넘어가 까맣게 숯이 되었다. 재가 감싼 속불씨는 다음 날까지 살아남았다. 몸을 불살라 재가 되어 불씨를 보호하기 위한 희생의 결과다. 

  불씨를 살렸던 재는 생을 마감하고 난로를 떠났다. 살아남은 불씨는 사라진 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도 불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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