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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14. 2022

산토닌

구충제로 휘발유를 마시라 했다.

  몇 년 전 JSA를 통해 북한을 탈출한 병사를 수술한 대학교수의 이야기가 충격적이다. 수술 중 뱃속에 회충이 많아 손으로 끄집어냈다고 한다. 구충제로 구제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고름 짜 내듯 회충을 짜냈다고 한다. 이 뉴스는 육십 년 전  ‘산토닌’의 기억으로 돌려놓았다.

  당시엔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산토닌이란 약 이름은 모든 사람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먹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초등학교 때 가을이 되면 연례행사로 단체 복용했던 구충제 이름이다.

 보릿고개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골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기가 있었다. 피부에 버짐 생기고 입에 침이 고이며 헛구역질도 했다. 소위 가위 배앓이, 거시 배앓이라 불리는 횟배앓이 탓이다. 몸속 창자 벽에 기생하던 회충도 춘궁기가 되면 먹을 것이 부족했던지. 뱃속을 휘젓고, 똬리 틀어 뭉쳐있었다. 배가 볼록하게 솟아올라 아프고 구역질이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횟배라며 “엄마 손은 약속, 엄마 손은 약손”을 주문 외우듯 반복하며 배를 문질러 주었다. 그러면 뭉쳐있던 회충 덩어리가 풀리며 거짓말처럼 배 아픈 것이 나았다. 횟배에 휘발유를 마시면 회충이 죽는다며 마시게 하는 어이없는 일이 널리 퍼져있었다.



 그때쯤이면 학교에서는 어김없이 채변봉투라는 것을 나누어 주었다. 채변이란 용어를 이해하기 힘든 우리들은 그냥 ‘똥’ 봉투라 불렀다. 똥 봉투에는 학년 반, 이름을 기록하는 곳이 있고 중간 부분 검사 결과를 표시하는 난에는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동양모양선충, 간디스토마라는 생소한 기생충 이름이 적혀있었다. 맨 밑 부분에 사단법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라는 큰 글씨가 적혀있는 봉투였다.

 똥 봉투를 나누어 줄 때 선생님은 채변 방법을 여러 번 설명해 주었다. 깨끗한 성냥개비로 대변을 콩알 크기만큼 떼어, 비닐봉지 안에 넣은 다음, 끝을 잘 여며서 학교로 가져오라고 일렀다.

 다음 날 교실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채변봉투에 변을 덕지덕지 묻힌 채 가져오고, 어떤 아이는 큰 덩어리 한 개를 통째로 넣어 오기도 해 그것을 처리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채변 검사 결과가 나오고 얼마 지나면 학교에서 단체로 구충약을 복용했다. 그날은 아침을 거른 채 빈속으로 학교에 가야 했다. 배 속이 비어야 회충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구충약을 잘 받아먹는다고 했다. ‘산토닌’ 알약 서너 개를 출석부 순서대로 줄을 서서 물과 함께 먹었다. 약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몇몇은 목 넘김을 못해 구역질하거나 토를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약을 쪼개 먹였다. 약을 먹고 나면 선생님은 내일 아침 대변을 보고 회충이 몇 마리 나왔는지 정확하게 세어 오란다.

 회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텃밭 고랑 사이에 대변을 봐야 했다. 그날은 항문이 간질거리고 소화 덜 된 길쭉한 음식 찌꺼기가 나오는 듯 영 달랐다. 코를 움켜잡고, 나뭇가지로 대변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미처 죽지 않은 회충은 나뭇가지를 피하려 꼼지락거렸다. 어떤 놈은 두세 마리가 엉켜있어 떼어내기도 쉽지 않다. 냄새가 고약하고 더럽기보다, 꼼지락거리는 회충 세는 일이 고역이다. 10 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회충을 한 마리, 한 마리 세는 일은 개구쟁이였던 나도 쥐꼬리 잘라가는 것보다 더 징그러웠다. 여자애들은 회충 마릿수를 세지 못해 아버지 도움을 받았다. 문제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말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자들은 몸속에서 징그러운 회충이 나왔다는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귓속말로 말하고는 얼굴이 빨개져 달아나곤 했었다. 개구쟁이들은 뒤쫓아 가며 “쟤는 일곱 마리 나왔대요.” 라며 놀려대는 일로 구충약 복용은 년 중 큰 행사였다.

 당시 우리 몸속 기생충은 빈곤의 결과였다. 비료가 부족해 인분이나 가축 분뇨를 거름으로 사용하여 농사를 지은 탓이다. 가재나 붕어를 날 것으로 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생활습관도 한 이유다. 1950년대 기생충 감염은 전 국민의 90%가 넘어 세계 1위였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채변검사는 단순한 기생충 검사였지만 오늘날 채변검사는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중요한 검사방법으로 발전하였다. 몇 년 전 남북정상회담 시 북한 당국은 김정은의 화장실을 별도로 준비했던 사실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변을 우리 정보당국에서 채집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도 유사한 조치를 했었다. 러시아에는 외국 정산의 대변을 수집하여 분석하는 특별부서를 둘 정도로 대변은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엄마들이 아기의 변 상태를 살피는 것도 그런 이유다.

 기생충 연구학자들은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알레르기가 늘고 있는 것은 기생충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알레르기는 면역질환 계가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경우 발생하는데. 수만 년 동안 몸 안에서 기생충과 함께해온 면역계가 기생충이 사라지면서 예민해져 각종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래서 기생충은 자가면역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 증거로 세계적으로 자가면역 질환자가 많은 나라는 유럽, 미국 등 기생충이 박멸된 선진국인 반면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기생충이 많은 나라에는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자가 매우 적다고 한다.

 기생충을 없애니 다른 질병이 생기는 생태계의 변화는 인간이 자초한 결과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도 인간이 스스로 파괴한 생태계의 영향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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