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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20. 2022

삼식이 두식이

두식이의 행복한 하루

  삼식(三食)이란 신조어가 생겨나 좀 얄망궂게 의미가 해석되곤 한다. 은퇴한 남편 식사를 걱정해주는 아내의 갸륵한 정성을 희화화하려는 시도다.

  아내가 외출 준비하면서 내 밥걱정을 한다. 밥은 보온밥솥에 있고, 냉장고에 반찬 만들어 놨으니 잘 챙겨 먹으라며 쉼 없이 반복한다. 

 “퇴직했다고 밥도 안 챙겨 주는 마누라 소린 듣기 싫어요.”라며 잔소리다. 삼식이를 챙겨주려는 갸륵한 마음이다.

  때가 되어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내가 그리 여러 번 이야기했건만 슈퍼마켓 같이 빽빽하게 채워진 냉장고에서 필요한 반찬 찾아내는 건 보물 찾기다. ‘삑삑’ 경보음이 울린다.   

  “에이!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나이가 몇인데 밥 한 끼 해결 못하고 아내가 챙겨주어야 하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려 주는 밥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고맙다는 생각 없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받았던 밥상이다. 그래서 삼식이 소리를 듣게 되나 보다. 아내는 밖에 나가서도 식사 걱정 때문에 전화다. 지난번 김치 한 가지로 대충 때웠던 것이 화근이었다.

 “식사 어떻게 했어요, 반찬 뭐랑 요?” 

 “김치 하고 시래깃국요.”

 “아이고 내 못 살아! 가지무침이랑, 게장 꺼내 먹으라고 했잖아요.” 

  아내의 밥걱정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며 함께 식사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자녀가 어릴 적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했다. 밥을 풀 때도 아버지 먼저, 생선 가운데 토막이나 잘 생긴 과일 등 좋은 건 항상 어른 몫으로 구분 지었다. 자식들에게 식사를 통해 아버지의 권위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삼식이 소리 듣지 않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내가 밥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외출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아들이 주방에 들락거리는 걸 금기시했다. 사내는 밖에서 큰 일을 해야지 주방은 여자들 몫이라 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주방 출입이 생소했다. 우선 주방에 들어가는 훈련부터 해보기로 했다. 손쉬운 설거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설거지에도 순서가 있단다.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나 도자기 그릇을 먼저 씻어내고 스테인리스나 주철 조리도구는 나중에 씻어야 한단다. 헹굼을 잘해야 세제가 완전히 없어진다고 했다.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내고 제자리에 정리해 놓아야 끝낸 거란다. 설거지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 해보니 앞치마 두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한발 더 나가 식사 준비를 돕기로 했다. 감자, 당근 다듬고 씻는 것을 도와주자 아내가 좋아하고 조금씩 재미도 생겼다. 양파 다듬으며 눈물 흘리자 그 일이 그렇게 서럽냐며 놀려댄다. 가장 쉬운 것은 압력솥에 밥하기였다. 등산 다니며 코펠에 밥을 해먹 던 내공이 빛을 발했다. 간 봐주고, 맛을 평가하며 주방에서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부수입이다. 

  결정적으로 써는 기술, 칼을 다루는 것이 난제였다. 반복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론보다는 실습으로 체득해야 하는 시간의 기술이었다. 가장 쉬운 무 깍둑 썰 기부 터 시작했다. 반복된 수련은 한석봉 어머니 가래떡 썰기를 능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채 썰기 가능한 단계에 도달했다. 언제까지 보조만 할 수는 없었다.

  


  삼식이를 벗어나기 위해 혼자 가능한 것부터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토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빵 두 쪽을 토스터기에 구운 다음 달걀부침, 햄 한 조각, 슬라이스 친 토마토를 빵 사이에 넣었다. 두툼하고 먹음직스러운 ‘삼식이 표 토스트’가 완성되었다. 거기다 우유 한 잔을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완벽했다. 삼식이가 두식이가 되는 순간이다.

  아내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밥 차려 줄 테니 애쓰지 말란다. 그러나 언젠가 혼자될지도 모르니 배워는 두란다. 갑자기 늙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가 만든 최초의 만찬을 차려 줄 테니, 당신은 나에게 최후의 만찬을 차려달라고 했다.

  아침에 눈 뜨면 주방으로 간다.  커피콩 넣고 핸드 드립 퍼를 돌린다. ‘드르륵- 드르륵-’ 진한 커피 향이 아내를 깨운다.  “여보 모닝커피요!”


  행복한 두식이 하루의 시작이다. 오래오래 옆에 있어주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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