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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Apr 23. 2022

쿵덕 방아

쿵덕 방아에서 비워야 채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웠다.

  손주와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자 눈의 먼저 놀랜다. 레고 블록, 바비인형, 마징가 로봇, 각종 자동차에다 무선조종 헬리캠까지 다양함이 놀랍다. 

  어릴 적엔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었다. 썰매 만들고, 팽이도 깎았다. 윷, 자치기 놀이 기구도 필요하면 만들어 놀았다. 또래 중에서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건 ‘쿵덕방아’다. 

  집 앞 논은 운동장이다. 추수 끝난 논은 잘려나간 벼 포기만 앙상하게 남아 푸르렀던 지난여름을 그리워하는 듯 쓸쓸했다. 그런 논바닥은 우리 차지다.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으로 시합하는 축구장이다. 설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경기장은 쥐불 싸움장으로 바뀐다. 싸움에 나설 병사들은 싸움준비에 분주하다. 통조림 깡통에 구멍 뚫어 쥐불 통 만들고, 송진이 잘 스며든 관솔도 넉넉히 준비해 둔다. 날이 어두워지면 아랫마을과 일전을 준비한다. 쥐불 통에 관솔을 넣고 불을 붙여 전장에 나간다. 근접하여 불붙은 통을 돌리며 위협을 가한다. 쥐불 통 불꽃이 최대가 되도록 빠르게 돌린다. 때론 상대방 통과 충돌하여 날려버리기도 한다. 일전이 끝나면 서로 이겼다면 허공을 향해 쥐불 통을 일제히 돌리며 승리를 자축한다.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 허공을 향해 일제히 쥐불 통을 던진다. 불똥으로 유성우를 만드는 것으로 쥐불 싸움은 끝이다. 동시에 함성을 질러 서로에게 화답하는 것으로 쥐불 싸움을 끝낸다. 



  봄이 되면 벼농사가 시작되어 운동장이 사라졌다. 농사철에 논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쿵덕방아’뿐이다. 발로 밟아 곡식을 빻는 디딜방아를 모방하여 만든 물놀이 장난감을 우리는 그리 불렀다. 아래로 내려올 때 “쿵덕”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쿵덕방아를 만들려면 뼈대를 만들 새총 가지 모양의 나무를 구하는 것이 첫 번째 일이다. 새총 가지는 물받이 그릇을 올려놓기 위함이다. 소나무, 밤나무, 아까시나무 줄기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새총 가지를 찾는다. 새총 가지 뼈대는 좀 굵고, 양쪽 거치대용은 엄지손가락 굵기면 충분하다. 

  밤나무는 단단하나 결이 있어 쪼개지는 단점이 있고, 소나무는 쪼개지지 않는 대신 약한 것이 흠이다. 아까시나무는 곧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양쪽으로 균형 잡힌 새총 가지 형태가 귀하고, 고양이 발톱보다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다루기 어렵다. 그러나 곧게 자라 거치대용으로 사용하기에 알맞다. 새총 가지를 팔꿈치 길이만큼 톱으로 자르고, 낫으로 아카시아 가시를 제거한 다음 자귀로 다듬는다. 

  물받이 그릇을 만들 차례다. 그릇 재료는 헌 조롱박이 최고다. 물받이는 쿵덕방아의 작동을 결정짓는 중요 부분이다. 물받이 그릇에 담긴 물의 무게와 반대편에 묶어 맬 디딤돌과의 무게 균형을 맞추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릇에 물이 차면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쏠려 밑으로 내려가 물을 쏟아내고, 물이 쏟아지는 순간 디딤돌로 무게 중심이 바뀌면서 아래로 내려가며 “쿵덕” 방아를 찧는 원리를 이용하는 쿵덕방아는 물의 무게 조절이 관건이다. 물받이 그릇에 물이 가득 채워지는 순간의 무게가 디딤돌 무게보다 약간 무거워야 한다. 물의 무게가 디딤돌의 무게보다 가볍거나, 돌의 무게가 물의 무게보다 무거우면 쿵덕 방아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냇가에서 디딤돌로 사용할 적당한 돌을 눈짐작으로 고른다. 우선 뼈대에 묶기 쉬운 직사각형 모양의 돌을 선택한다. 골라놓은 것 중에서 손으로 들어보며 물받이 그릇에 담길 물의 무게를 짐작하며 선택한다. 

  몇 번 만들어 본 경험이 있던 터라 적당한 무게를 손으로 느낄 수 있다. 돌이 골라지면 새총 가지 반대편 뼈대에 단단히 묶어 맨다. 적당한 크기로 대충 만들어 놓은 조롱박을 새총 가지 부분에 올려놓고 디딤돌과 물그릇의 무게 균형을 맞춰나간다. 

  방아 뼈대 중간 부분에 가로로 설치대를 묶은 다음, 임시로 설치한 거치대에 돌을 묶어 맨 뼈대를 올려놓는다. 아래로 내려가 있는 디딤돌 부분이 위로 올라올 정도로 조롱박에 물을 조금씩 채워가며 물의 양을 조절한다. 물 채운 조롱박이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의 물의 양을 기준으로 물 흔적만큼 조롱박을 잘라내면 된다. 완성된 조롱박을 새총 가지 위에 고정하면 완성이다.  

  


  완성된 쿵덕방아를 가지고 집 앞 논으로 간다. 물이 흐르는 도랑 낮은 곳에 아까시나무 거치대를 나란히 박아 고정하고. 방아의 가로 지지대를 올려놓는다. 

  작동을 위해 물을 공급할 수로를 만들면 된다. 수로는 대나무로 만든다. 적당한 굵기 대나무를 골라 반을 쪼갠다. 결이 강하여 낫을 이용하면 쉽게 쪼갤 수 있다. 쪼갠 대나무의 속 마디를 제거하고 밑을 돌과 흙으로 고이고 잔가지를 옆에 박아 고정해 준다. 수로에 공급되는 물이 너무 많으면 수압이 강해 물받이가 위로 올라오지 못하므로 조금씩 천천히 흐르도록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몸으로 체득한 과학과 수학의 원리가 총동원된 장난감이다. 만드는 과정 중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하면 실패한다. 과정마다 완성된 후 동작 상태를 사전에 예측하며 만들어야 한다.     

  물받이에 물이 차면 “쿵덕” 아낌없이 쏟아 버리고, 쏟아 버리면 다시 채워지는 과정을 쪼그리고 앉아 골똘히 바라본다. 어릴 적 ‘쿵덕방아’를 통해 비워야 채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해가 지면 논에 고요가 깃든다. 달과 별이 내려오고, 이슬이 찾아드는 들판은 온전히 쿵덕방아 차지다. 


   “쿵덕, 쿵덕, 쿵덕….” 밤새 비우고 채워간다.(사진 : le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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