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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y 04. 2022

훈장을 팝니다.

명예가 사라진 훈장은 고철 덩이다.

  훈장(勳章)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명예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국인(國印)과 대통령 관인이 날인되어 수여되는 가장 높은 품격의 상이다. 내용 면에서도 국가에서 인정할 만큼 큰 공적을 세웠다는 의미이기도 하여 수상 자체가 명예로운 일이다. 

  대통령 셀프훈장 수여가 논란거리다. 초등학생 숙제장에 ‘참 잘했어요.’ 스탬프 날인을 받는 것도 스스로 찍는 경우는 없다. 선생님이 스스로 노력한 성과에 대한 칭찬과 격려로 주는 상이다. 학생은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았기에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논란거리가 된 훈장은 대통령 부부가 본인에게 수여하는 ‘무궁화 대훈장’이다. 대한민국 훈장 중 국가 원수급에만 수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큰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상훈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무궁화 대훈장을 비롯하여 전시 전투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무공훈장이 있고.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사소한 문제없이 33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할 때 수여하는 근정훈장이 있다. 그밖에 정치․경제․사회․교육 분야 유공자에게 수여되는 국민훈장, 문화예술 분야의 특별한 공로에 수여되는 문화훈장과 국가 안전보장 공로자에게 수여되는 보국훈장 등이 있다. 

  상(賞)의 가치는 명예다. ‘참 잘했어요’를 받은 학생도 공정한 평가결과로 받았기에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장관급 표창을 받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훈장 수상은 꿈같은 상이기도 하다. 

  어릴 적 친구 집에 갔다가 유리 액자로 표구하여 안방 가운데 걸려있는 할아버지의 내무부장관(현 행정안전부) 표창장을 본 적이 있다. 친구 집에선 할아버지께서 장관상을 수상 했다는 사실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업적을 후손에게 전하며 존경하는 듯했다. 그 할아버지는 훌륭한 분일 것이고 나라에 큰 공적을 세운 분이라 생각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둔 친구가 부러웠다.  

   


  1982년 보국훈장을 수상했다. 여러 종류의 훈장 중에 보국 및 무공훈장 수훈자는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국가유공자로 인정된다. 따라서 국가보훈처에서 관리되고 상응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런 대우를 국가에서 하는 두 종류의 훈장은 국가와 국민의 안정 보장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참여했거나 유사한 업무에 투입되어 혁혁한 공을 세워야 받을 수 있다. 생명 담보에 대한 보은인 셈이다.

  훈장 자체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말썽 난 무궁화 대훈장의 제작 단가가 육천만 원에 달한다는 보도를 보고 궁금했다. 지금까지 가슴에 담고 살았던 훈장 수상에 대한 명예와 자긍심이 제작 가격 비교에 깡그리 무너지는 순간이다. 속물처럼 훈장을 돈에 가치로 환산하려는 생각에 수십 년 지켜온 자존심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이는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수십 년간 근속하며 쌓아온 명예에 대한 보답으로 근정훈장을 수상하고 퇴임하는 이들의 자존심에 대한 손상이기도 하다. 훈장 자체의 제작 가격은 의미가 없다. 물적 가격으로 불과 몇만 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수상에 대한 명예의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가치다. 

  보통사람들 아니 수상자 본인도 훈장을 받으면 대단한 혜택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훈장 수상했다고 주어지는 혜택은 전혀 없다. 내 삶이 국가와 국민, 사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공헌을 국가가 인정해 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자긍심과 커다란 명예로 생각할 뿐이다. 다만 보국, 무공훈장의 경우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 법률이 정한 범위 내 약간의 혜택이 있을 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역사적 평가에 따라서는 위인으로 남을 명예다. 스스로 육천만 원짜리 금덩이로 만든 무궁화대훈장을 수상할 이유가 무엇일까? 책상 위에 놓여있는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셀프로 찍어가는 초등학생과 무엇이 다를까? 

  불과 몇만 원에 제작된 근정훈장을 수상하고 평생 명예와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공직자가 있다. 금덩이로 만든 훈장을 셀프로 수상하는 행정 수반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이들은 훈장 수상을 숨기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할아버지 훈장은 얼마짜리야?” 손주 질문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긍심과 명예가 사라진 훈장은 의미가 없다. 숨기고 싶은 애물단지일 뿐이다.   

  

  “내 훈장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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