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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y 06. 2022

이사 가는 날

향천리 사람들은 저수지에 삶을 묻었다.

  고향을 삼켜버린 커다란 청천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언저리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걸어본다. 갈대숲을 지나고 물 위에 만든 다리도 건넌다. 산책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수문을 바라본다. 잔잔한 물결에 반사되는 석양빛 위로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이 느껴진다. 잔물결 사이로 물에 잠긴 고향 집 돌담이 보이는 듯하여 이사 가던 날이 떠오른다.    

 


  고향을 떠난 것은 대천 앞바다 간척지 공사가 원인이었다.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고 그곳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저수지가 필요했다. 최적지로 향천리가 선정되었다. 옥계, 청라면에서 흐르는 두 개의 천이 만나는 지점을 막아 저수지를 만든다고 했다. 둑이 완성되면 우리가 사는 ‘시루셍이’ 마을은 물에 잠겨 사라진단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불도저, 페이로더 이름도 생소한 커다란 중장비가 마을을 통째로 밀어 벌릴 듯 오갔다.

  평소 농한기 같으면 마을 어른들은 사랑채에 모여 육백을 치거나. 마을 앞 장산천으로 천렵을 나가 붕어, 참게 등을 잡아 막걸리나 마시며 소일했을 거였다. 그랬던 마을에 저수지 공사가 시작되자 빈둥대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에 돈이 돌고 흥청대기 시작했다. 임금을 받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주막이 시끌벅적거리고 고깃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 여유는 얼마 가지 못했다.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에 이사 가야 했다. 전답 없는 읍내로 갈 수도 없고, 농토 찾아 타향살이해야 할 걱정에 마을은 뒤숭숭했다. 고향 떠나 먹고 살 대책도 없이 한 집 두 집 고향을 떠났다. 

  이주민에게는 염기 빠지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간척지 논 구백 평과, 이주비 명목으로 약간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랏일이니 그것만이라도 보상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삶의 터전을 마련해 달라거나, 보상이 적다며 시위를 하거나 이의제기 없이 동의서에 손도장을 찍어 주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상비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대천 읍내로 이사 갈 형편은 못되었다. 몇 달 동안 여러 마을을 알아본 끝에 사촌이 살고 있던 신대리로 가기로 했다. 사촌이 있으니 생판 모르는 타지보다는 타향살이가 덜 할 것이고, 보상금으로 집과 약간의 논을 마련할 수 있어 적당한 곳이었다.     

  한 달 전부터 어머니는 이사 준비를 했다. 가재도구를 꺼내 묵은 먼지도 털고, 뒤 광에 보관했던 마늘이며 고추, 참깨 등은 자루에 옮겨 담았다. 장독대 항아리도 깨끗하게 닦았다. 이부자리도 개울 빨래터에서 깨끗이 빨아, 다림질하여 고운 이불보에 싸 놓고 집 주변을 둘러봤다. 

  이끼긴 돌담 따라 골담초 나무가 노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아름드리 감나무가 무성한 잎을 하늘거리고 있었다. 열아홉에 시집와 이 집을 장만하고 아홉 남매를 길렀던 고향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 듯….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골담초 꽃잎을 하나씩 떼어 입에 넣으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신대리로 이사 가려면 마산 재를 넘거나, 읍내로 돌아 큰길 따라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읍내로 돌아가려면 이십 여리 더 먼 길이다. 이삿짐 이래야 낡은 장롱과 이부자리, 부엌살림, 가재도구 몇 개가 전부라 돈을 주고 소달구지를 빌려 옮기는 대신 산길 따라 지게로 져서 나르기로 했다.   

  이사 가는 날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웃사촌이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 이사를 도왔다.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아낙들도 허드레 바지에 허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커다란 소쿠리 하나씩 들고 모여들었다. 힘이 장사인 김 씨와 최 씨는 장롱과 돌절구를 짊어지고, 나이 많은 이 씨 등은 이브자리, 곡식 자루 등을 힘에 맞게 짊어졌다. 아낙들도 부엌살림을 소쿠리에 바리바리 담아 머리에 이었다. 어머니는 요강과 불씨 담은 화로를 중히 여겨 직접 챙겼다. 

  이삿짐을 이고, 짊어진 이십여 명의 이사행렬이 꾸려졌다. 무거운 장롱을 짊어진 김 씨를 선두로 뒤편에는 아낙들이 따랐다. 이사행렬은 읍내 장사꾼 상단의 이동행렬을 보는 듯했다. 이사행렬은 논길 지나고, 장산천을 건너 마산재를 넘기 위해 산길로 접어들었다. 좁고 가파른 산길은 주변 나무들이 이사행렬을 성가시게 잡아당겼다. 부피가 큰 장롱이나, 긴 농기구를 지고 가는 사람은 옆으로 게걸음 치며 비켜 가기를 반복하며 산길을 올랐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땀범벅이 돼도 한마디 불평이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사를 돕는 건 당연한 일로 힘든 건 잊은 듯했다. 

  마산재 정상에 올라 행렬은 휴식을 취했다. 어머니는 새참으로 준비한 개떡과 막걸리를 펼쳐놓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휴식도 잠시 서둘러 출발했다. 향천리 사람들은 이삿짐을 갖다 놓고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은 더욱 힘들었다. 주변 나무들에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지게 발끝이 돌이나 경사면에 걸려 넘어질 수 있어 몇 배는 더 조심해야 했다. 지게로 짐을 나르는 것이 일상화된 터라 지게와 몸이 하나처럼 움직여 능숙하게 산길을 내려왔다. 동네 길에 접어들어 순탄하게 이사행렬은 새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행렬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집으로 들어가 안방에 요강을, 부엌에 불씨 화로를 갖다 놓으며 소원을 빌었다. 신대리 사람들도 이사 오는 우리를 구경하러 나와 있었다. 

  이삿짐 푸는 사이, 어머니는 돼지고기 넉넉히 넣고 김치찌개 끓이고, 밥도 지었다. 큰형은 그사이 마을 주막에서 막걸리 한 통을 잰걸음으로 사 왔다. 이삿짐 지고 온 사람들은 물론 구경 온 동네 사람들도 대접했다. 막걸리 한 순배가 돌고 나자 향천리, 신대리 두 동네 사람들은 오래된 친구같이 한마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삿짐 날라준 향천리 사람들은 서둘러 일어섰다. 어둡기 전에 마산재를 넘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떠나는 이웃 사람들 손을 일일이 잡으며 어디로 이사 가든 다시 만나자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무거운 이삿짐을 날라주고 기쁘게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행복한 아름다움을 보았다.(사진 : le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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