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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25. 2022

열다섯 평

콘크리트 바닥 잔디밭에서 도시를 벗어나 본다

  ‘싹둑싹둑’

  웃자란 잔디가 잘려나간다. 장마로 손보지 못한 사이 한 뼘은 자랐다.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은 조금만 내버려 둬도 티가 난다. 토끼풀, 바랭이, 망초, 쇠뜨기, 새포아풀에 이름 모를 잡초까지 게으름을 탓한다. 사실 그것들은 잔디와 영역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내 도움으로 편하게만 살아온 잔디는 그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뽑고, 자르고 별별 수단 다해도 포기할 줄 모르는 잡초는 힘겨운 상대다. 때맞춰 물 주고, 거름 주고 잡초와의 싸움에도 편들어 주며 오냐오냐 키운 탓에 잔디는 자생력이 약해졌다. 폭신거려 좋다고 칭찬만 받아본 탓이다.    


  건물 지으며 옥상에 주택을 지었다. 콘크리트 옥상에 특별한 전원주택을 지은 거다. 핵심은 잔디밭 조성이다.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도록 단 차를 둬 낮게 설계하여 열다섯 평 잔디밭을 만들었다. 자연 배수가 가능토록 인공시설도 갖췄다. 구멍 숭숭 뚫린 플라스틱 배관을 밑에 깔고 사이사이에 밤톨만 한 자갈을 채웠다. 그 위에 부직포를 덮은 다음 모래 섞인 몇 톤의 흙을 올렸다. 무게를 고려한 구조 설계까지 신경 썼다.

  잔디를 가꿀 때 전원주택에 사는 행복감을 느낀다. 깎을 때 자동 기계보다 수동 가위를 사용한다. 긴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낮은 자세로 잔디와 근접한 상태에서 깎아 나간다. 한 움큼씩 잘려나갈 때마다 풋풋한 냄새가 폴싹 폴싹 올라온다. 향수에 비길 바가 아니다. 잔디 깎기는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정화작업이다. 웃자란 채 그대로 두면 햇빛이 바닥까지 미치지 못하고 통풍이 안 돼 짓무르고 썩어간다.

  웃자란 잔디를 깎아내고 속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곳엔 다른 세상이 있었다.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이 좋은지 어린 땅강아지가 바삐 돌아다니다 깊숙이 파고들고. 개미집 귀뚜라미는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지 조그만 몸뚱이를 숨기려 짧아진 잔디 사이를 파고드느라 비비적댄다. 딱다기 녀석은 깎아놓은 잔디밭에서 운동회를 하는지 짧은 뒷다리를 구부렸다 펴며 뛰어오르길 반복한다. 오늘 같은 날에 율동이 빠질 수 없다며 나나니는 깎아놓은 잔디 더미를 무대 삼아 꼬리를 씰룩거리며 아늘거린다. 신명 나는 세상이다.     



  도시는 웃자란 빌딩으로 덮여 간다. 점점 더 높아지는 아파트가 그렇고, 경쟁하듯 솟아오르는 빌딩 숲이 그렇다. 햇빛 가려지고, 통풍이 원활치 못해 도시는 병들어 간다. 밤하늘 별을 잃었고, 청명한 하늘도 빼앗겼다. 숲이 사라져 공기가 탁해지고 숨쉬기조차 힘들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누군지 알아볼 수 없고, 예쁜 모습도 볼 수 없다. 한 줄기 빛이라도 더 받으려 고층을 선호하고, 가려진 전망을 찾으려 더 높이 올라간다. 빛 잘 들고 전망 좋으면 덩달아 가격도 올라간다. 그런 집에 살겠다고 빚에 쪼들리는 사람도 많아진다. 웃자라면 허약하듯 빌딩 숲에 가려진 도시는 점점 생기를 잃어간다. 햇볕을 쏘이지 못해 얼굴은 창백해지고, 비타민 디 결핍 환자도 많아졌다. 먼지 들어올까 창문 잠그고 미세먼지 무서워 외출도 자제한다. 이웃이 없고, 웃음도 사라졌다. 웃자란 빌딩 숲을 벗어나려 산을 찾고, 잃어버린 자연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도시는 가꿔줘야 자라는 잔디밭 같다. 깎아주고 잡초를 뽑아주듯 누군가가 관리해줘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심을 곳도, 신선한 공기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 공기청정기가 걸러주는 공기를 마시고, 환풍기가 보내주는 바람을 쐰다. 햇빛 대신 전기로 불을 밝히고, 물조차 누군가가 보내주어야 마실 수 있다. 먹을 것조차 다른 사람이 재배해 주어야 먹을 수 있다. 관리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잔디 처럼 도시 삶이 버겁다.  


  입으론 잔디밭 있는 전원주택에서 텃밭 가꾸며 살고 싶다고 하면서 도시로 모여든다. 콘크리트 바닥에 만든 열다섯 평 잔디밭에서 도시를 벗어나 본다.(사진 : le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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