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보려는 거위의 꿈은 상술 앞에 무너졌다.
얼마 전 거위의 꿈을 접었다. 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꿈을 키워왔었다. 무모한 짓이라고, 너무 늦었다고. 질타와 비아냥거림도 감수했었다. 문학을 전공한 것도,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할 수 있겠냐며 꿈을 접으라고 했을 때 접었어야 했다. 실망으로 변한 건 날기 위해 비행을 준비하기 직전이었다.
글쓰기 도전을 생각한 건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아내가 외출하고 혼자 남겨지자 은퇴 울타리에 갇혀있는 나를 발견했다. 무기력하게 시간과 공간에 갇혀 노년을 보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벗어날 출구를 찾아야 했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침묵을 깼다.
혼자 할 수 있는 것, 아니 멍한 시간을 때울 대안이 필요했다. 글을 써보기로 했다. 도전이라는 울타리는 생각보다 높고 견고해 벗어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이 앞선다. 무모하지만 날아 보자고 용기를 낸다.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자판기를 두드릴 수가 없다. 쓸 이야기가 생각나질 않았다. 직장에서 보고서 쓰는 것에 자신 있던 터라 글 한 편 쓰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어릴 적 친구와 싸울 때 먼저 덤벼 코피를 터트리면 이기는 것처럼 우선 덤비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렸다. 십 분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내렸다. 글감이 생각나질 않는다. 수필집 몇 권을 뒤적여 봤다. 기성작가들의 글감도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소재다. 삶의 주변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 하굣길 논두렁에서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던 일, 소풍날 숨어서 혼자 먹던 삶은 달걀의 고소함, 고추 꺼내놓고 오줌 줄기 멀리 보내기 시합하며 누구 것이 더 큰지 비교해 보던 일…. 쉽게 생각하니 주변에 널린 것이 이야깃거리다. 글감은 찾았으나 주제를 어떻게 펼쳐야 글이 될 수 있을까? 산 넘어 산이다.
글쓰기 이론이나 창작 공부를 틈틈이 해두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기본이라도 익혀볼 마음에 글쓰기 강좌에 등록했다. 수강생 대부분은 글쓰기에 도전했다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유명 작가처럼 잘 써야겠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시작조차 못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강사는 쉽게 시작하란다. 문법이나 형식은 무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보란다. 들을 땐 알 것 같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오면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진솔한 마음을 담아서 쓰라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진솔하면 읽어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은퇴 후 ‘삼식(三食 )이 ’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써보기로 했다. 반쪽을 쓰자 더는 나갈 수가 없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도전 자체가 무모한 짓이라며 자책한다. 상담을 요청했다. 강사는 길게 쓴다고 좋은 글이 아니라며 용기를 준다. 써놓은 글을 반복해서 읽어보란다. 인위적으로 늘리려 하지 말고 읽는 사람이 편하도록 살을 붙이고, 불필요한 부분은 줄여 보란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하루 만에 날씬해지고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글도 여러 번 읽고 수정하다 보면 군더더기가 없어져 좋은 문장이 된다며 자신을 가지란다. 써놓은 글을 여러 번 읽고, 아내 평가도 받아봤다. 살이 붙고 매끄러워졌다.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즐거워졌다.
수필이란 체험한 실체적 사실을 산문적으로 풀어서 형상화하여 쓰는 거라고 설명하지만, 글감에 대하여 나만의 해석과 의미를 부여해 자유롭게 써보기로 했다. 길거나 짧거나 분량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으니 한결 부담이 덜했다. 막상 쓰다 보면 갈증이 난다. 문법이 맞는지, 문단 구성은 올바른지? 체계적인 글쓰기 공부에 대한 부족함에서 오는 갈증이다. 인터넷 문법 교정 사이트를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몇 번 쓰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소재에 대하여 가치 있게 수용하고 담긴 의미를 찾아내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것에 대한 유추적 사고를 통해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혀갔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쓰는 즐거움에서 읽히는 행복감으로 진화하면서 독자의 마음을 훔치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제목에 신경을 쓰게 되고, 첫 문단에서 독자를 잡아둘 수 있도록 세밀하게 신경 쓰게 되었다.
날아 보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배고픈 미물들이 우글거리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오물통도 있고, 진흙탕도 있었다. 고민하는 순간 음습한 안내판이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한 글씨로 ‘지폐를 바닥에 깔면 통과할 수 있음.’이란 글귀가 보였다. 이해할 수 없어 자세히 읽어 봤다. ‘첫째, 만 원짜리 백오십 장 이상 깔아야 통과할 수 있음. 둘째, 통행증이 인쇄된 백 권을 택배로 보내줌. 셋째, 협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대우함. 단, 협회비 별도임.’
지폐를 충당할 수 없어 실망한 채 다른 문을 두드렸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꽤 유명한 집이다.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날아보려 왔다고 내 소개를 하자 초보자를 이해시키려는 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등단은 작품의 질이 꼭 결정적이진 않다고 하면서 우리 집과 관련 있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신인 작가 공모’ 창구를 활용하면 된단다. 공모 당선사례로 일정 수량 책을 구매하고, 협회 가입, 정기구독 정도가 이쪽 업계의 관행이라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날아보려는 꿈과 현실은 달랐다. 순수한 거위의 꿈을 배고픈 시장 상술이 놔둘 리 만무였다. 날개가 퇴화하여 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무리하게 날으려 했었다. 꿈은 꿀 때 행복할 뿐 잠에서 깨어난 순간 사라진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거위는 꿈에서 깨어나 브런치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