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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Jun 08. 2022

마누라, 그렇게 잘 났소?

남편을 어린애로 보는 거요? 아님, 큰아들로 보는 거요?

  마누라 오늘 당신에게 한마디 해야겠소. 당신 그렇게 잘 났소? 당신은 내가 어린애로 보이요? 아님, 큰아들로 보는 거요? 휴일에 모처럼 뒹굴며 편하게 쉬려고 하면 여지없이 한마디 하잖소.

  “제발 씻고, 면도하고 머리도 단정히 하세요.”

  하루라도 편하게 그냥 놔두면 안 되겠소? 그것뿐이 아니요. 외출할라치면 셔츠, 넥타이, 재킷, 바지 심지어 벨트와 구두 색상까지 당신 취향에 맞게 골라주고 입으라 하니 난 개성도 없고 취향도 없는 줄 아시오.

  당신, 그렇게 잘 났소?

  지난번 부부 모임 다녀온 날 말이요. 술김에 목소리 좀 커지고 말을 많이 했다고. 남자가 말이 많다느니, 남자들은 술만 먹으면 한소리 또 하고 쓸데없는 말 한다고 지적질 얼마나 했소. 당신은 길 가다 만난 친구와 하하 호호 수다 떨 때 옆에 서서 삼십 분 넘게 기다리는 난 무슨 생각을 했겠소.

  결혼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생각 안 나오. 선물을 한 아름 사서 퇴근 버스 내리는 곳으로 마중 나오라고 전화했더니 통화 중이라 무거운 선물 꾸러미 양손에 들고 삼십 분 걸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수다 떨어 부부싸움했던 일 잊지 않았지요. 당신 수다는 필요한 이야기고, 내가 말하면 쓸데없이 체면 깎이는 이야기란 말이지요?

  당신, 그렇게 잘 났소?



  말 나온 김에 기념일 날 선물 이야기도 해야겠소.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부부에 날, 무슨 기념일만 되면 당신은 왜 받으려 만 하시오? 당신 혼자 결혼을 했소. 혼자만 부부요? 그리고 지난번 결혼기념일 날 딸과 아들 내외가 준 용돈 말이요 그것도 당신 혼자 마포(麻布) 속바지 방귀 빠져나가듯 슬그머니 써버리더니, 또 선물해달라고 하오. 당신만 선물 좋아하는 줄 아시오. 나도 받고 싶소.

  마누라, 내 기억력 테스트를 하는 거요? 아니면 당신 기억력 자랑하는 거요?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 기억도 없는 일을 날자 까지 구체적으로 끄집어내며 이야기하는 것이 장기인 줄 알지 마는 일 년 전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 명품 가방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돈을 내어놓으라고 하며 구체적 상황까지 이야기하는데 난 기억이 없소.

  그것뿐이요. 삼십 년이 훨씬 지난, 큰애 태어나던 날 꽃다발 사다 주지 않아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경전 외우듯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엔 당신 두뇌가 편향적 기억을 하는 듯하오. 잘해준 일은 전혀 기억 못 하면서, 서운한 일만 기억에 남으니 말이요. 나는 서운한 일 없는 줄 아시오?

  당신 잘난 척이 그것뿐인 줄 아시오. 당신 친구 모임 다녀오면 난 피곤하오. 누구네 막내는 족집게 과외받아 성적이 쑥 올랐다며 우리 아들도 과외를 시켜야겠다든지, 누구는 보톡스 맞아서 젊어 보이는데 나도 필러 시술이라도 받아야겠다고 하여 내가 논리적으로 문제점을 설명해 주면.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다며 친구 말은 철석같이 믿고 내 말은 도대체 믿지 않으니 난 피곤하오.

  그뿐이 아니요. 누구는 수입차로 바꾸고,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느니, 누구 남편은 증권투자로 돈을 벌었다느니, 명품 가방, 반지 이야기... 아무 관련이 없는 이야기로 나는 피곤하다오.

  당신 편견은 어떻고요. 친정에 갈 때는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이것저것 마구 사서 앞장서 출발하고 장모님 용돈 잊을까 봐 액수까지 확인하면서, 시댁에 갈 때는 갔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가냐며 피곤하니 늦게 출발하자고 하면서, 선물 살 때도 비싼 것 많이 산다느니 하면서 제동 거는 당신 편견을 내 모를 줄 아시오.  

  


  그랬던 당신도 이젠 변했나 보오. 잔소리도 줄고, 욕심도 없어지고 손잡고 산책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말이오. 남편이 불쌍하다 하고, 친구 말보다 남편 이야기를 더 신뢰하고, 좋은 것 보면 남편 먼저 챙겨주는 당신을 보니 나이 들어가나 보오.     

  당신, 정말 잘 나긴 잘 났소. 사랑하오.(사진 Lee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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