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시간 죽이기의 시작이다.
퇴임식 마치자 하늘을 날 듯 어깨가 가벼워졌다.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비상대기 같은 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늦잠부터 실컷 즐길 생각이다. 전화기는 구석에 처박아 놓고 아무리 울려대도 받지 않을 거다. 그동안 호주머니에 살면서 신경 쓰게 하고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다. 하긴 이 녀석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제 나름 할 일을 했는데도 걸핏하면 전화기 타령으로 구박받았던 적이 한두 번 아니다.
퇴직했음에도 여섯 시면 기상이다. 이불 뒤집어쓰고 늦잠 자려 번데기 시늉 아무리 해봐도 자동으로 눈이 열린다. 삼십 년 넘는 출근 습관이 뇌 시계에 알람을 고정해 놓은 탓이다.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습관 오류를 수정해 주려는 듯 한마디 한다. “여보 출근할 일도 없는데 왜 일찍 일어나요?”
아침 먹을 때까지 기다림이 지루하다. 지금쯤이면 사무실에서 한창 일할 시간인데…. 거실을 배회하다 TV를 켠다. “정치하는 놈들 한심하네! 저런 자가 국회의원이라니” 혼자 정치 평론도 해 본다. 그래 봤자 한 시간 겨우 지났다.
월요일 여유 있게 도봉산 산행에 나섰다. 산행은 퇴직자들의 시간 죽이기 첫 과정이다. 얼마만의 평일 산행인가! 한 발 옮길 때마다 여유가 느껴지고 홀가분하다. 그것도 잠시,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은지 거의 주말 인파다. 나 같은 은퇴자일까? 아직 일할 나이 같아 보이는데 평일에 산에 오는 사람이 이리 많다니…! 한 달 내내 산에 올랐다. 공기도 좋고 건강도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시간 제약 없이 매일 반복하는 산행은 즐거움이 없다. 무엇 때문에 산에 오는지? 자문해 본다. 건강관리? 그건 핑계다. 돈 적게 들이고 시간 죽이는 것 외엔 다른 이유가 없다.
퇴직 동기들이 골프 가자기에 따라나섰다. 주말 골프가 평일 골프로 바뀌니 자유를 얻은 기분이다. 운동 후 십구 홀로 거나하게 마셔도 출근 걱정 없으니 좋다. 대화 내용, 살아온 과정도 같은 옛 동료와 함께하는 시간 죽이기엔 골프가 최고라고 큰소리다. 착각이란 걸 집에 도착하면 실감한다. 하루 몇 시간 죽이자고 사십여만 원 지출하는 건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담에야 불가능한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
하루가 시작되면 별다름 없는 지루함의 연속이다. 점점 시간 흐름이 느려지고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고 유튜브 채널 검색에 목이 뻐근하고 눈이 침침해진다. 누군가 세월 속도는 나이와 정비례하여 빨라진다 하던데 하루는 반대로 가는 것 같다.
아내가 외출한 날 혼자 남겨져 퇴직 울타리에 갇혀있는 나를 발견했다. 무기력하게 시간과 공간에 갇혀 노년을 보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벗어날 출구를 찾으려 초점 없는 시선으로 창 멍에 빠졌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침묵을 깬다. 시간을 죽일 근본적 대안이 필요했다. 퇴직자의 울타리는 생각보다 높고 견고해 벗어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이 앞선다.
글을 써보기로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자판을 두드릴 수가 없다. 쓸 이야기가 생각나질 않았다. 직장에서 보고서 쓰는 것에 자신 있던 터라 글 한 편 쓰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어릴 적 친구와 싸울 때 먼저 코피 터트리면 이기는 것처럼 우선 덤비면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컴퓨터 자판에 손을 올렸다. 십 분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글감이 생각나질 않는다. 수필집 몇 권을 뒤적여 봤다. 기성작가들의 글감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소재다. 지나온 삶의 주변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초등학생 때 하굣길 논두렁에서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던 일, 소풍날 숨어서 혼자 먹던 삶은 달걀의 고소함, 고추 꺼내놓고 오줌 줄기 멀리 보내기 시합하며 누구 것이 더 큰지 비교해 보던 일….
쉽게 생각하니 널린 것이 이야깃거리다. 글감은 찾았으나 주제를 어떻게 펼쳐야 글이 될 수 있을까? 산 넘어 산이다. 글쓰기 이론이나 창작 공부를 틈틈이 해두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기본이라도 익혀볼 마음에 글쓰기 강좌에 등록했다. 수강생 대부분은 나 같이 글쓰기에 도전했다가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유명작가처럼 잘 써야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시작조차 못 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강사는 쉽게 시작하란다. 문법이나 형식은 무시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써보란다. 집에 오면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진솔한 마음을 담아서 쓰라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진솔하면 읽어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퇴직 후 삼식(三食)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써보기로 했다. 반쪽을 쓰자 더는 나갈 수가 없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도전 자체가 무모한 짓이라며 자책한다. 강사는 길게 쓴다고 좋은 글이 아니라며 용기를 준다. 써놓은 글을 반복해서 읽어보란다. 인위적으로 늘리려 하지 말고 읽는 사람이 편하도록 살을 붙이고, 불필요한 부분은 줄여 보란다.
다이어트 시작했다고 하루 만에 날씬해지고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글도 여러 번 읽고 수정하다 보면 군더더기가 없어져 좋은 문장이 된다며 자신을 가지란다.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팔 년이 되었다. 시간 죽이기에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자판 두드리다 보면 지루할 시간이 없다. 육천여 명이 구독하는 비매품 잡지에 첫 원고를 보낸 이후 지금까지 열다섯 편 정도 보내고 원고료도 받았다.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에서 다양한 작가들과 글을 공유하고 그들의 글을 보느라 시간 죽일 틈이 없다. 내 글에 관심을 보이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 죽이기가 아닌 진솔한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하다.
거기다 더해 시간 죽이기와 싸움하는 은퇴자들에게 ‘은퇴자 시간 죽이기’란 주제로 글쓰기 홍보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지루하다는 건 종일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 조정 전문가로 활동하는 은퇴자들이다. (사진 lee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