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나뭇가지는 벌써 여름내 애써 길렀던 잎은 떨구기 시작했다. 추워지기 전에 가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몇 차례 여행을 같이했던 이웃들이다. 오 년 전 일본 벚꽃 구경, 재작년 겨울엔 제주 시골길 여행도 함께 다녀왔다. 종심(從心)을 지나 산수(傘壽)를 향해 함께 가는 늦깎이 친구들이다. 이번 여행지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자며 대천으로 정했다.
대천 앞바다는 썰물이 끌고 나가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갯벌을 꺼내놓았다. 뻘 끝에 걸린 커다란 붉은 바퀴가 갯골 따라 긴 노을을 끌고 간다. 한동안 갯벌 끝에 걸린 불덩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석양을 붉게 칠하다 지쳐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듯 긴 꼬리를 자르더니 불타는 바닷속으로 굴러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그 순간 서해 갯벌은 암전 상태로 바뀌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주름진 눈가에 촉촉함이 보였다. 생을 마감한 뒤 찾아든 어둠에 대한 두려움일까? 화려했던 황혼도 사라지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만 남는 것이 삶의 종말인 듯 허무함으로 다가와 가슴을 미어지게 한 탓이다. 누군가 “아름다운 황혼을 위하여!”라며 우울한 ‘멍 때리기’ 침묵을 깨운다.
돌아오는 길 차창으로 바라보는 잎 떨군 나뭇가지가 삭막하다. 어떤 가지는 삭정이로 변해 생명을 잃었다. 부러진 삭정이를 보면서 땔감 한 다발을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나무꾼이 되었다. 장성한 큰 아들과 둘째가 한 달 사이를 두고 입영영장을 받아 군에 입대하여 졸지에 나무꾼이 된 거다. 암 투병으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대신할 유일한 일손이었다. 어머니는 땔감을 구하겠다고 무작정 산을 올랐다. 낫 질이나 갈퀴 질을 해 본 경험이 없던 어머니는 나무 밑에 떨어진 삭정이를 주워 모았다. 소나무 삭정이가 좋으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 밑에 떨어진 것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허리 굽혀 겨우 한 다발 정도 모았다. 젊은 장정들은 집채만큼 땔감을 모아 나무짐을 꾸려 지게에 지고 내려왔다. 손등이 가시에 찔리고, 상처가 나는 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누워있는 방을 따스하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저곳 헤매고 다녔다. 그리 모은 삭정이는 하루 땔감에 지나지 않았다.
가엽게 여긴 장정들은 땔감 한 짐을 우리 집에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머니는 삭정이를 주우며 병석에 누운 아버지 모습을 생각했다. 팔다리는 물론 갈비뼈 마저 근육이 빠져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모습이 불쌍해서다.
"아버지 불쌍해서 어쩐다냐? 뼈가 다 드러나서 삭정이 같으니...!"
입버릇 처럼 되네이시던 어머니였다.
삭정이로 변한 나무들도 한땐 왕성한 푸르름을 자랑했으리라. 봄이면 연초록 어린잎을 피우며 여름을 기다렸고, 여름이면 왕성한 푸르름으로 엽록소를 생산하고 뿌리에 양분을 저장하며 미래를 준비했을 거다. 가을이 다가오면 한 해 결실을 돌아보며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음껏 자랑했을 거였다. 뼛속 깊이 한기(寒氣) 들기 시작하면 생존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도 있었다. 우선 물관 속에 떨켜층을 만들어 물오름을 차단하고 극단의 갈증도 참아야 하고, 한파에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인내의 시간도 견뎌야 한다. 그보다 더 괴로운 건 강풍에 부러질 가지를 내어주는 일이다. 뿌리째 뽑혀 통째로 죽는 사태를 막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내어준 가지가 삭정이다. 떨어진 삭정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유다.
나이 들어 사물을 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우리 삶도 자연 이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근육 빠지고 골다공증 심해진 앙상한 팔다리를 만져본다. 몇 해 더 이겨낸다 해도 삭정이처럼 부러질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어느 날 아궁이 땔감처럼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삭정이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하나 둘 삭정이 떨어지듯 친구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 (사진 : lee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