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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한 번 깜박거리는 것이 그리 힘드오

아내는 오늘도 깊은 잠에 빠져있다.

by 이광주

아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서둘러 지하철을 타야 한다. 일주일에 세 번 허락된 면회 시간에 늦을까 걱정돼서다. 그것보단 며칠 사이 미세한 변화라도 있었을까? 하는 기대 탓에 조급함이 더하다. 면회를 기다리는 중환자실 앞은 언제나 근심 가득한 사람들로 우울하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말이 없다. 고개를 숙인 채 중환자실 앞을 서성이며 “○○보호자 들어오세요.”에 귀를 모으고 있다.

하루에 두 명, 한 명 당 15분의 면회 시간이 주어진다.

면회 중 하는 말은 아주 단순하다.

“여보 나 왔어, 잘 이겨내고 있지?”

“내 말들리면 눈 깜박거려 봐요.”

아내는 오늘도 고집을 부린다.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속삭이듯 말해보고, 좀 큰소리로 애원하듯 말해도 고집을 꺽지 안는다. 내가 미워서 그러면 딸 만날 때만이라도 깜박해주면 좋으련만. 벌써 며칠째 요지부동이다.



아내는 눈이 참 예뻤다. 잠잘 때 내려다보는 눈이 특히 그랬다. 반달 모양 동그란 눈썹이 살포시 덮은 눈은 갓난아기의 눈매와 다름없었다. 얼마 전에 나이 탓인지 꼬리 쪽 눈썹이 빠졌다며 딸과 함께 눈썹 시술을 받고 와선 젊어 보이냐며 몇 번을 물었었다.

그리 예뻤던 눈에 이상이 생긴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삼 년 전 시술했던 뇌동맥류에 큰 변화가 생긴 걸 정기 검사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시술 일 년 후, 이 년 후 정기 검사에서도 전혀 이상이 없었고 담당 의사도 예후가 매우 좋다며 만족했었다. 문제를 발견한 건 올해 오월 정기 검사 때였다. MRA 촬영결과는 심각했다. 의사로서 가족으로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영상 결과였다. 최초 발견 당시 십삼 미리 뇌동맥류가 이십 미리 까지 커진 것도 놀랍지만, 시술로 채워 넣었던 백금 솜털 뭉치가 사방으로 흩어진 모양이 더 심각했다.

의사는 한동안 영상자료를 이리저리 돌려볼 뿐 말이 없었다. 이삼 분 침묵이 아내에겐 가장 긴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큰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어떡하면 좋아요?” 아내는 울먹이듯 말했다.

“20년 넘게 ‘코일색전술’을 해 왔는데…!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 알 수 없네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당장 조치해야겠어요.”

긴급 입원이 결정되었다. 응급 시술해야 할 심각한 상태로 판단되었다. 날벼락이다. 지난해 검사와 같을 거라며 손잡고 웃으며 병원에 왔다. 저녁에 맛있는 것 먹고 들어가자며 메뉴를 이야기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입원이라 아내를 병실에 남겨두고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내는 전화를 걸어왔다.

“속옷 몇 벌, 담요, 수건, 로션…. 늦게 입원해서 환자식을 신청하지 않아 옆자리 환자 보호자가 김밥을 사다 줘 먹었어요.”라며 깔깔거렸다.



다음 날 오후 시술이 결정되었다. 식사 대용으로 두세 종류의 수액 주머니가 주렁주렁 아내를 따라다녔다. 헐렁한 환자복을 입은 아내는 다소곳이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했다. 동그란 예쁜 눈에 잔뜩 겁먹은 표시가 역력했다.

“여보 걱정하지 마!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번에도 수월하게 했으니 잘할 거야. 내가 당신 끝까지 지켜준다고 했잖아, 힘내 여보” 위로인지 걱정인지 혼자 말을 하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왜 그럴까? 아내는 눈물을 보이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시술 시작 20여 분이 지났을 즈음 의사가 황급히 보호자를 찾았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뇌출혈이 발생했습니다.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정전된 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뇌 속이 텅 비어버린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살려야 된다. 의사니까 살리겠지?

“설명이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환자를 살리세요.”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아들딸에게 긴급하게 병원으로 오라며 전화를 돌렸다. 차마 의사가 했던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엄마가 많이 안 좋아 병원으로 와야겠다.”

난 이미 최악을 상태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으로 무엇이든 결정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처음 느꼈다.

아들딸과 함께 의사의 수술결과를 들었다. 마취와 조형제를 투입하며 병변 위치에 도달해 보니 이미 뇌출혈이 발생했다는 것과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거였다. 향후 치료는 중환자실에서 이틀 동안 저체온, 저혈압 상태를 유지하여 뇌의 부종을 막고 뇌를 쉬게 하면서 정밀 관찰을 한 후 내일 설명하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내를 면회했다. TV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각종 측정 장비들이 펄스를 그리며 아내를 지켜보고, 대여섯 종류의 수액 주머니가 이겨내도록 돕고 있었다. 길고 탐스럽던 머리칼을 대신하여 몇 개의 센서들이 이곳저곳 붙여져 있었다. 뇌압조절을 위한 도관이 머리 중앙에 꽂혀있고, 입에는 가래 제거용, 코에는 산소공급을 위한 호스가 아내를 살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눈은 퉁퉁 부어올라 예쁜 모습은 사라지고 꼭 감은 채 우리를 보려 하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의식에 변화는 없고, 눈의 동공이 퍼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의식에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눈동자를 관찰하고 자극을 주어 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단다.



종교에선 의식은 없어도 귀는 열려있어 말을 들을 수 있단다. 그 말을 나도 믿고 싶다.

“여보, 눈 한 번 깜박거려 봐요.”

눈 한 번 깜박이는 반응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스위치다.

코마(의식이 완전히 소실된)상태에서 의식이 돌아온다는 최초의 감각을 눈에서 찾아보려 부탁하고 애원하는 말이다. 이제는 완치를 바라는 건 희망 고문임을 자각하는 단계에 와 있는 내가 너무 무섭다. 다 괜찮다. 장애가 와도 말을 못 해도 좋다. 의식이 돌아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엊그제처럼 당신 손 잡고 산책하던 길을 함께 걸어 줄 테니 눈 만 한 번 움직여 주면 좋겠다.

동공이 퍼진 아내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다. 예쁘고 아름답던 눈이 초점 없이 동공이 흩어진 상태로 변했다는 것이 너무 무섭다. 부부싸움 할 때 독수리 눈처럼 날카롭게 째려볼 때도 무섭진 않았었다.

며칠 전부터 임종 단계에서 해야 할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하곤 소름이 돋았다.

“여보 당신 너무너무 사랑했고, 좋은 사람이었어,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일생에 가장 잘한 일이야. 애들도 잘 키웠고 당신은 훌륭한 엄마야”


"여보! 눈 한 번 깜박거리는 것이 그리 힘드오?" 아내는 오늘도 눈을 깜박거려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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