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사를 누가 결정한 단 말인가
오늘도 중환자실 앞을 서성이며 아내 만나길 초조하게 기다린다. 미미한 의식이라도 돌아왔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주일이 지났건만 눈 한 번 깜빡거려주질 않았다. 눈동자가 아니면 센서가 물고 있는 손가락 끝 한 마디라도 꼼지락거렸다는 소식을 고대하고 빌었다.
담당 의사의 우울한 표정이 기쁜 소식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 느껴졌다. “어머님은 변화가 없으셨어요. 뇌 CT 촬영결과가 어제보다 검게 나오고, 뇌 주름이 보여야 하는데 더 안 좋게 나왔어요. 면회 끝나시고 시술 교수님과 특별 면담을 하고 가시지요.”
예감이 좋지 않다. 무슨 말을 하려고 중환자실 의사가 시술 교수까지 합동 면담을 하라는 것일까?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이 뇌리를 스쳐 간다. 아니야 새로운 치료법 시도 거나 비싼 비보험 신약 같은 것을 사용해 보겠다는 의견을 말하려고 그럴 거야. 애써 나쁜 예감을 무시하려 아들딸에게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의 아랫배는 덕지덕지 붙여놓은 센서가 무거운 듯 겨우겨우 오르내리고 가늘고 긴 산소공급 호스가 그걸 돕느라 힘에 부치는지 불규칙하게 펄스를 그려낸다. 혈압 강하제 도움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혈압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위태롭다. 일주일 사이 살아있다는 듯 머리카락만 오 미리 정도 자랐다.
미지근한 체온이 남아있어 아내를 느낄 수 있는 이곳저곳을 주물러 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귀는 열려있다는 믿음으로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추억들을 말해주었다. 연애할 때 처음 강릉여행 가서 여관에 들어갔을 때의 어색한 분위기를 첫 키스로 돌파했던 일, 신혼여행 돌아오는 페리호에서 멀미하는 걸 보면서 벌써 입덧하냐며 놀렸던 일, 작년 오월 딸과 함께 갔던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의 아름다운 카페에서 먹었던 레몬 케이크. 지금까지 먹어 본 가장 맛있는 케이크라며 좋아했던 일 기억나지?
여보 일어나서 스위스 여행 예약해 놓은 거 가야지? 딸이 비즈니스 항공권 사줬다고 얼마나 좋아했어…, 근데 이게 뭐야?
만지면 아프다고 가장 싫어했던 발가락 끝을 꼬집듯이 사정없이 눌렀다. 종아리 근육도 강하게 움켜쥐었다 놓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중환자실 옆 조그만 면담실에서 시술했던 권 교수, 중환자실 정 교수와 우리 가족이 무거운 침묵 속에 마주 앉았다. 먼저 권 교수가 아내의 진료기록과 영상자료를 모니터에 띄워 놓더니 설명했다. 저체온과 저혈압을 유지하며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의식변화를 세밀하게 지켜본 결과 코마(의식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뇌 CT 촬영을 통하여 관찰한 결과도 더 안 좋습니다. 현재는 의학적으로 임종기(臨終期) 연명 치료단계에 와있습니다. 의식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의학적 치료방법은 없습니다.
어찌하란 말인가? 살려달라고, 살려고 병원을 찾아와 의사에게 진찰받고 치료를 의뢰한 것인데 더 이상할 수 없다니! 의사가 할 말인가? 받아들일 수 없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뇌출혈로 몇 시간씩 헤매다 병원 와서도 수술받고 회복된 사람도 많은데 멀쩡하게 웃으며 왔다가 삼십여 분 만에 수술실에서 의식 잃었는데 살릴 수 없다니?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더니 몇 가지 절차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어머님께서 사전에 ‘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하지 않으셔서 가족 2인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연명 치료중단은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가족 동의서와 의사의 진료기록을 병원 내 윤리위원회에 제출하여 승인되면 연명 치료중단을 시행하게 됩니다. 어머님 상태로 추정해 볼 때 연명 치료를 중단하면 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 거로 보입니다. 묵묵히 듣고 아들딸의 흐느낌이 가슴을 후벼 팠다.
아내는 가는 숨을 겨우 이어가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살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연명 치료중단을 논의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의사는 현대 의학으로 어느 정도 연명은 가능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상실된 상태라고 했다. 의료진이 판단한 임종기 과정을 지나쳐 장기 연명 단계로 넘어가면 의사도 가족도 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택할 법적 수단이 없어 무한정 연명 치료를 지속하며 가족도 환자도 후회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아닌 환자를 위한 진정한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신의 영역인 아내의 생사를 가족이 결정해야 한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