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라고 할 순 없었다.
아내는 여행을 좋아했다. 다녀온 곳만 해도 수십 개 국가다. TV 여행프로그램을 보면서 다 가본 듯 말할 정도다. 이번엔 아주 특별한 먼 여행을 홀로 가려는 듯 느낌이 사뭇 달랐다. 여행 준비할 때마다 기분이 들떠 있어 이것저것 옷을 고르면서 색상이 어울리는지? 사진은 잘 나오겠는지? 입어보길 반복하며 핸드폰 촬영 요청에 귀찮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말도 없고, 표정도 없다. 그런 아내의 여행을 떠나게 놔둘 순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의사는 우리가 아닌 아내를 위해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말들이 귓전에 맴돌아 무작정 여행을 반대할 수만도 없어 고민은 깊어졌다. 하루라도 빨리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가족들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아내의 여행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은하계(銀河系)로 여행을 가는 것부터 현대 과학이 가면 돌아올 수 있다는 입증조차 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떠나려 하니 가슴은 타들어 가듯 아팠다.
아내의 손을 잡고 이번엔 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수없이 달래고 애원도 했다.
며느리를 포함한 온 가족이 모였다. 여행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도 자식도 아닌 오직 아내의 의지뿐이다. 그런 아내의 결정을 가족이 대신하라고 의사는 말한 거였다.
가장인 내가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수천 배 힘들어하는 자식들에게 고통을 전가할 수는 없었다. 이미 아내의 먼 여행에 대하여 많은 조언을 들었다. 가까운 종교 지도자, 형제, 지인에 이르기까지 가족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한계에 대한 도움을 청했다. 도움의 중심에는 ‘진정 아내를 위한 길이 무엇일까?’라는 거였다.
“이젠 엄마가 먼 여행을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놓아드리자. 엄마는 우리가 힘들어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아내 스스로 결정하여 출발하면 고통이 덜할 것 같았다. 의사는 어머님 상태는 예측할 수 없는 심정지나 후유증인 연축(뇌혈관 수축)이 발생하여 추가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여행을 아내 홀로 떠나라고 남편이 사랑하는 가족이 할 수는 없었다. 겨우겨우 가느다란 산소 호스에 의지하여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는데 그걸 잡아떼고 출발하라고 할 순 더더욱 없었다.
갑자기 아내 스스로 결정하여 떠날 것에 대비하여 준비는 해 둬야 했다. 처음 가는 은하계에서 신분증을 대신할 큰 사진을 준비해 주기로 하고 사진을 찾았다. 고르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다. 작년 이탈리아 여행, 생일 가족 모임, 젊은 시절 사진…,
그중에서 미소가 아름다운 가족사진 중에서 한 장을 선택했다. 아내 부분만 크게 확대하여 품격 있게 액자에 넣고, 흰 국화꽃 리본으로 장식했다.
아내는 여행 갈 땐 화려한 옷을 좋아했다. 단색에 껄끄러운 마 소재보다는 비단같이 부드럽고 화사한,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컬러 풀한 걸 좋아했다. 주변에서 예법이니 뭐니 따지는 삼베옷보다 아내의 취향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내의 옷장을 처음으로 자세히 살펴봤다. 장롱문을 여는 순간 달콤한 체취가 가슴에 안겨 온다. 옷가지 하나하나에 감싸있던 사연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어떤 건 백화점의 분위기가 어떤 건 사랑의 달콤함이 특이하게 아내의 수다가 생각나는 옷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옷을 골랐다. 물론 상․하의 색상 매치, 양말 색상까지 평소 아내가 고르던 방식대로 따라 했다.
여행준비는 ‘아내가 좋아했던 대로’라는 진솔한 마음으로 차분히 하려 했다. 한 가지씩 챙길 때마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주저앉아 주먹으로 가슴이 터지도록 내려쳤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목표로 하는 은하계에 대한 예약 및 절차에 대한 것까지 남편으로 도와줄 수 있는 준비는 마쳤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수많은 유사사례 정보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할수록 결정할 수 없도록 우리를 힘들게 했다. 육 개월 만에 어떤 사례는 일 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의사를 믿고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