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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엔 왜 빛나는 별이 없을까

아내는 잊으라고 빛을 바라지 않는가 보다

by 이광주

은하수 공원을 찾았다. 은하계에서 별 하나를 찾기 위해서다. 깜깜한 골짜기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아내는 장미의 계절에 은하계로 먼 여행을 떠났다. 석 달 전이니 지금쯤 도착하여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을 텐데…! 별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기 전 우리 가족은 생지옥을 경험했다. 상상의 지옥이 아닌 인간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극한의 슬픈 순간순간이었다.

다정하게 웃으며 대학병원에 MRA 촬영 결과를 보러 왔다가 불과 삼십여 분의 짧은 시간에 아내는 의식을 잃었다. 그 순간, 지옥의 수렁에 함께 빠졌다.

그 후 아내를 만나는 것조차 통제받았다. 월수금 오전 10시, 짧은 시간 동안 면회가 허용되었다. 서둘러 아내 상태를 살피고 하고픈 말을 해야 한다.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만날 때마다 희망보다 절망이 컸다. 바라는 것도, 기대도 아주 단순했다. 아내가 눈 한번 깜빡거리는 걸 보는 게 희망이고 소원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의사는 이미 판단을 내린 듯 환자를 대하는 분위기가 처음보다 달랐다. 완치보단 연명 치료를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면담 시간에 의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의학적으로 의식 회복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재는 임종기 단계로 연명 치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족이 협의하여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더 깊은 지옥으로 빠져들었다.


가족이 모두 모였다. 죽음을 의미하는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건 남편도 자식도 아닌 오직 아내뿐이다. 아내가 말이 없으니 내가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두고두고 후회될 고통을 자식에게 전가할 수는 없었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많은 조언도 들었다.

아내와의 사랑을 넘어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냉혹한 결단을 각오하고 있었다.

결정하기 더욱 힘든 건, 수많은 유사사례와 주변의 조언이었다. 육 개월 만에, 어떤 사례는 일 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의사를 믿고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내는 점점 안 좋은 상태로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한 달째 퍼진 동공에 변화가 없고, 혈액순환 상태가 나빠져 피부 괴사가 진행될 우려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


결국,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결정 직후, 가족의 임종 면회가 이루어졌다. 마지막까지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내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삶을 정리하여 말해주었다.

“당신과 결혼한 것이 내 일생에 가장 잘한 거였소, 사랑했고, 좋은 아내로, 엄마로 함께 해줘 우린 너무 행복했고, 당신이 자랑스러워. 참, 이 말은 꼭 기억해 줘요 나도 당신 곁으로 갈 거야…!”

오열과 통곡으로 임종 면회를 끝냈다. 의사가 주렁주렁 달려있던 링거줄, 인공호흡 마스크 등 의료기기를 제거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제거 후 임종까지 2~30여 분, 특별한 경우 며칠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대기실 시간은 초 단위로 흘렀다.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간호사가 급하게 우리를 불렀다. 곧 임종하실 것 같습니다. 아내는 먼 여행을 떠나려 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얼굴을 바라봤다. 미처 눈을 감지 못하겠는지 동공이 흩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육신의 호흡이 거둬지기 전 인간의 이성은 쓸데없는 겉치레가 되고, 본능에 의한 연민만이 작동했다. 얼굴 피부가 파래지는가 싶더니 빠르게 핏기 사라진 하얀 피부로 변했다. 순간, 조금 전과 전혀 다른 평온한 모습이 보였다.

아내의 눈을 아래로 쓸어내려 주었다. 동공이 퍼진 눈보다, 잠잘 때 반달 모양 동그란 눈썹이 살포시 덮인 갓난아기 같은 아름다운 눈으로 기억하고 싶어서다.

의사가 시계를 보더니 “5.27 12:37 사망하셨습니다.” 끝이었다.

온기 식어가는 손을 차마 놓을 수 없었다. “여보 잘 가요 사랑해요.”



아내가 제일 좋아했던 고운 옷으로 갈아입히고, 꽃 가꾸기를 즐겼던 아내를 위해 예쁜 생화로 관을 가득 채웠다. 그곳에 아내를 눕혔다. 내가 해 줄 마지막 선물이었다.


며칠 후 세종 은하수 공원 너른 잔디밭에 푯말 하나만 남겨 놓고 떠난 아내를 찾았다. 은하계 어딘가에서 빛을 발할 별 하나를 찾기 위해서다.


은하수엔 빛나는 별이 보이질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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