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헤매려 하니

진작 홀로 설 준비를 했어야 했다

by 이광주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자 걸음마부터 먹는 법, 살아가는 법…,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양육시켰다. 결국엔 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아시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홀로 서고 독립하여 가정을 이뤄 부부가 도우며 삶을 이어간다. 그런 삶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 한때, 홀로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누구나 나이 들고, 은퇴하면서 한 번쯤은 홀로 설 마음에 각오는 다졌을 터이다. 우선 설거지부터 해보겠다고 앞치마를 두르는 것이 시도다. 삼식(三食)이 벗어나야 아내 미운털 박히지 않는다고 선배들 조언을 수없이 들었던 터다. 아침만이라도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커피 내리고, 토스트 굽는 것부터 시작해 본다. 그런 건, 사랑이고 애교의 홀로 설 준비다.


어느 날 갑자기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다섯 달 전 홀로 남겨졌다. 급작스레 아내가 떠나면서 삶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 내 삶을 사랑하며 행복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형인 나는 맨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기 위해 커피콩을 갈면 커피 향이 집안을 휘감아 돌며 식구들을 깨운다. 모닝콜인 셈이다.

내 몫인 아침 준비를 위해 앞치마를 두른다. 그동안 연습했던 터라 자연스럽다. 퇴직 후부터 ‘지중해 식단’으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채소, 과일, 빵 위주의 식단이다. 토마토, 가지, 루꼴라, 양상추 등 채소류와 단백질을 고려한 달걀, 치즈, 견과류에 발사믹 식초, 올리브유 등 그날그날 약간의 식재료에 변화를 준다.

아내는 이런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나도 아내에게 뒷바라지하느라 고생 많이 했으니 대접받고 즐기라며 서로 사랑하며 은퇴 후 삶이 행복했었다.

이랬던 삶이 홀로 되며 무너졌다. 행복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살아야 할 의미를 잃었다. 이런 말이 야속하긴 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래서 미리 홀로 설 준비를 했었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칠십 세가 지나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고란을 보면 백세시대는 희망 고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홀로 설 준비는 거창한 게 아니다. 혼자 세끼 식사를 해결할 대비가 최우선이다. 함께 있을 때 간장, 된장 양념류는 어디에 있는지 소소한 것부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 알 것 같은데…, 세탁기에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부터 당황스럽다. 서로 어느 은행을 어떻게 거래했는지? 어떤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도 같이 알고 있어야 한다. 퇴직 당시 만든 비자금도 이쯤 되면 이실직고할 때이다. 막상 혼자되면 집안 빗자루가 어디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당하고 보니 광야에 홀로 버려진 처지다.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은 한 끼의 식사다. 상(喪)을 치른 후 모두 돌아가고 텅 빈 집안에 홀로 남겨진 나. 아침은 무얼 먹고 또 점심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세탁은, 집 안 청소는?

때가 되어 냉장고를 열어본다. 다 알 것 같았는데 빽빽하게 채워진 냉장고 속에서 필요한 걸 찾아내기란 보물 찾기다. ‘삑삑’ 경보음이 울린다.

에이!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근데 김치는 어디에 있더라…. 급한 대로 라면으로 몇 끼를 대체하고 나면 홀로 된 걸 실감하게 된다. 요리 학원이라도 미리 다녀둘 걸 후회도 된다.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점점 무기력해진다.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무엇이 그리 급해 나만 남겨놓고 떠나 버렸는지…?

말할 상대 없는 고독함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TV는 눈치 없이 혼자 떠들어 댄다. 고양이 ‘야옹’ 소리마저 정답게 들린다. 나이 든 남자들은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처럼 처음 본 사람과도 친숙하게 대화할 친화력을 길러야 한다. 고작해야 몇몇 지인들과 관계를 이어가긴 하지만, 수시 만나는 친구나 이웃사촌 같은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홀로 서려면 수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e at Night/2017년)’에서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에디가 외롭게 사는 옆집 루이스를 찾아가 밤이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며 함께 침대를 공유하자고 제안을 한다. 대화를 나누며 잠이 들고 싶다고 한다. ‘노년에 젊은 날의 추억은 사랑할 순 있겠지만 젊은 날의 추억일 뿐.’이라며 대화를 통하여 현실적 교감을 나눈다. 서로를 이해하며 위로받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간다. 이 영화에서 감독(리테쉬 바트라)은 노년의 홀로 사는 외로운 삶에서 당당하게 행복을 찾아 나서라고 조언하는 것 같다. 대화상대 없는 홀로 된 외롭고 쓸쓸한 삶의 명연기가 현실처럼 와닿는다.


고독을 나눌 대화상대라면 누구든 좋고, 취미를 같이하는 친구나 이성이면 더 좋다. 그런 친구들이 있으면 홀로서기 반은 성공한 셈이다.

아내가 사경을 헤맬 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황상태였다. 나를 잡고 일으켜 준 건 골프를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수시 찾아와 진심 어린 조언과 고통을 나눴다. 그들이 있어 이겨낼 힘이 되었다.

나이 들어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고, 아내에게 한 끼 식사를 차려 주는 건 행복한 홀로 설 연습이다.


아내가 있을 때 어머니가 예견했던 것처럼 홀로 설 준비를 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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