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눈을 떴는데 한시간 반 동안 릴스를 보다가 9시가 되어서야 책상에 앉았다. 아침에만 느껴지는 상쾌한 정신은 온갖 잡다구리로 복잡해지고 머릿속은 멍하다. 근래에 단발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간해서는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핸드폰을 확인하고, 어제 있었던 일을 곱씹고, 망상에 빠졌다. 일상의 지루함을 정신없는 일들과 교환하고 그 대가로 많은 종류의 집중력을 잃었다.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붕 뜨는 몸을 자꾸만 억지로 눌러본다. 조금만 방심해도 내 몸은 공중을 떠다니니까.
이럴 때 적절한 처방은 산책과 요가, 그리고 글쓰기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 행위의 감각과 고요함이 내 기억 속에는 깊게 새겨져 있기에 하루를 새로 시작하면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자 라는 다짐을 밥 먹듯이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몇 개월 만에 펜을 들고 종이에 무엇이든 적어 내려간다. 한자 한자 그림문자 처럼 보이는 이 한글들을 눌러 적을 때마다 내 시선은 산만한 망상에서 지금 이 순간으로 조금씩 돌아온다. 마음에 무언가 울컥하는 것들이 나를 다잡아 현재로 이끈다. 참 신기하다. 이 내면에는 도대체 무엇들이 있길래 아무 말 없이 숨어있다가도 그 이름을 불러 찾으면 언제든 현재의 감각 옆자리로 소환될까.
글쓰기라는 것이 그렇다. 찾지 않으면 잠들어 있고 퇴화함이 두려워 다시 글을 쓰기 주저하면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충동적으로 펜을 잡고 써 내려가면 다시 선명하고 또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언젠가 나와 항상 아침마다, 저녁마다 함께였던 글쓰기는 자취를 감춘 것 같다가도 언제든 옆에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 다짐을 하기까지 수 많은 무력함과 무감각함, 자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지나갔지만 다시 한번 느낀다. 내면의 이름을 부르고 몸을 움직이면 어느 순간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책을 읽고 트위터를 보고 갖가지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곱씹을 때마다 나는 글쓰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함을 넘어서 현재로 다시 회귀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위대한 것을 세포들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펜을 잡지 않았고 그렇기에 이 세포들을 하나 하나 제자리로, 현재의 자리로 돌려놓을 순간이 절실하다. 이 머리와 몸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도 많이 남아 보이는 미래의 불확실함, 줄어드는 흥미, 무언가 빠진 듯한 인간관계, 가족들의 존재…
사람은 왜 발생하지 않은 미래까지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서 상상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타고 났을까. 그 능력을 이용해서 미래를 창조하는 일보다 현재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이기만 한다. 불확실함을 두려워하고, 패턴을 예측해 미리 결정하고( 뻔하지 뭐/왠지 안될 것 같아/어짜피 등등) 당장 주어진 현재의 것을 쉽게 포기해버린다.
현재는 왜 그렇게 중요할까? 어떤 글에서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말이다. 지금 당장으로 보이는 순간은 1분 후, 1초 후 과거가 되고 시간의 개념은 흐른다는 것을 넘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다는데 당장의 ‘현재’라는 것은 왜 이렇게 중요하게 느껴질까?
내게 있어서 그 이유는 존재함에 있다. 존재함을 특히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나는 과거의 나에게 느껴지는 감각을 온전히 기억할 수 없고 미래의 나에게서도 느낄 수 없다. 오직 현재라고 칭해지는 이 순간이, 그것이 당장 1초 후 과거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 존재함을 온전히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현재에 집중해야만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
그 방법으로 내게는 글쓰기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 DNA에 글이라는 것이 새겨진 것 같다. 현재에 존재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그 DNA는 결국, 어쩌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십대에 썼던 일기장을 사십년이 지나도 새 것처럼 보관하고, 틈만 나면 책상에 앉아 펜을 끄적이고, 죽은 뒤에야 수 많은 글들을 적어 보관했던 것을 그제야 발견했던 나의 엄마말이다. 왜 그때는 그 글과 일기를 읽어 볼 생각을 안했을까. 엄마와 나는 너무 많은 것이 닮아 있고 서로의 DNA를 실제로 공유하고 있다. 그걸 너무나 몰랐다. 내가 가진 수 많은 특징들이 엄마에게서 선천적으로, 또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엄마가 죽은지 오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너무나 달라 보이던 엄마와 내가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