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성스럽다.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은 영롱하게 빛나며 주변을 선명히 밝힌다. 문득 내 일기는 왜 “아침에 일어나” 라는 구절이 태반일지 생각해본다. 아침이 어떤 존재이기에 이리도 자주 등장하는지.
2017년 경 호주에서 머물던 가정집을 기억한다. Noosa 해변 근처 싱글맘의 집이었을 것이다. 저녁 내내 기억도 나지 않는 걱정과 불안을 담고 있었고 핸드폰을 하면서 눈이 빠질 듯 아팠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 아니 이른 새벽에 눈을 떴는데 이상하리만치 명료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더라’, ‘무슨 꿈을 꾸고 있었지’ 등 몇가지 생각을 하며 눈을 깜박이는 순간 쓰나미처럼 전날 밤의 기억들이 나를 무겁게 잠식했다.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그 날 아침의 불안과 우울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맑은 정신으로 깨어났던 그 새벽녘의 찰나를 더 강렬하게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다. 대비를 통해서 경계를 인식하는 것처럼, 오직 밤을 지나온 눈에게만 빛이 비로소 밝음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그날 경험한 감각의 음영은 내게 깊이 새겨졌다.
잠을 자는 사이 뇌척수액이 뇌 속 노폐물을 씻어낸다고 하던가? 뇌는 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토닥이며 위로하기 위해 온갖 걱정과 불안을 청소해주고 다음 날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 선물이 지속되기를 5초가 될지 1분이 될지 1시간이 될지, 어쩌면 하루 내내 지속될지는 이제 아침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2017년 그 순간의 나는 5초도 유지하지 못했지만 2025년의 나는, 적어도 오늘 만큼은 그 선물을 하루 내내 간직할 능력을 갖추었다.
태양을 숭배하고, 바닷바람에 날려온 소금기를 피부로 느끼고, 동백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듣고, 옆 집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듣는다. 햇빛이 밝혀주는 사물들의 선명한 모습을 온전히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마치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냥 다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