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비 Sep 27. 2022

늪에는 초록의 혼이 있다

DAY3 진주에서 창녕우포늪 까지

어젯밤은 진주 부자마을로 알려진 지수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지수남명진취가’라는 입에 참 안 붙는 이름의 숙소인데 진주시청에서 예산을 들여 관리하는 곳으로 쾌적하고 외관은 꽤나 으리으리하다.

22년 6월 신축된 지수남명진취가


지수면은 손바닥만한 마을임에도 금성, 삼성, 효성 등의 재벌기업 창업주가 함께 자랐으며 꽤나 유명한 인사들(심지어 허경영도 있음)이 청소년기를 보내기도 한 신기한 곳이다. 주말에는 관광객이 몇 백명씩 방문한다고 내심 자랑을 하던데 사실인지는 모르겠고 내가 있는 동안은 관광객 흔적도 안보였다. 기업가정신 수도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게 마주친 동네분들은 모두 농사 짓거나 음식점을 운영하셨는데 아침으로 먹었던 비빔밥만큼은 기깔나게 맛있는 것이 기업가정신, 아니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배부르게 먹고 동네 산책하면서 지금은 아무도 기거하지 않지만 OOO생가라는 이름으로 곱게 보존된 고옥들을 한참 구경하고는 마을을 떠났다.



나는 한시간 이상 운전을 하면 몸과 정신이 조금씩 분리되는 고약한 병이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한시간 이상 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지도를 샅샅이 살핀 결과 지수면과 50KM 떨어진 곳에 유명한 관광지를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창녕 우포늪. 관광통역안내사 필기 공부할 때 국내최대규모 람사르습지 – 창녕우포늪 하고 기계적으로 외웠던 곳인데 드디어 가보게 되다니.

주차장에서부터 차량과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우포늪은 정말 넓어서 마치 거대한 호수 같았다. 그 크기에 걸맞게 ‘생명길’이라는 둘레길은 약 10KM로 세시간 걸리는 도보코스다. 남는게 시간인 백수(=나)에게 딱 좋고 우포늪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출발했다.


초반에는 우거진 나무덩굴 때문에 전체 풍경을 볼 수 없고 녹조라떼만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개구리밥. 초등학생 때도 집에서 기르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던 개구리밥은 알고 보면 수질정화도 해주고 물고기들의 은신처 역할도 해주는 녀석이란다.

그런데 정말 은신처 아니랄까봐 수 많은 개구리밥과 부레옥잠 밑으로 뭔가 움직이더니 거대 괴생명체들이 함께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저게 거북이네 물뱀이네 맹꽁이네 하더니 거대 가물치로 입을 모았다.

가물치를 들어보긴 했지만 가물가물해서 바로 검색했다. 그동안 해양생물 생김새에 크게 반감을 가지진 않았지만 사진을 보고는 바로 꺼버렸다. 너희들의 정체를 보지 않고 나는 갈게…


한참을 나무 구경하고 하늘 구경하고 새들 구경하고 걷다 보니 어느새 출발점으로 돌아와버렸다.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떠난다니 아쉽다. 체험센터에서 본 ‘늪에는 범할 수 없는 초록의 혼이 있다’는 시구처럼 오늘만큼은 내 마음도 초록으로 남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 혼자 등반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