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105 주년을 기념하며!

by 이종철

일본과 달리 한국은 꽤 오랜 직접 민주주의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폭정과 문란한 세정으로 고통을 받던 조선조말 백성들이 일으킨 수많은 민란들도 그런 뿌리의 하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을 참고 참아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때 그들은 읍회나 향회에 모여 자신들의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했다. ‘수령이나 감사는 무력하고 고식적이어서 탄원해봐야 효과가 없으니 분을 풀고자 한다면 읍회만한 것이 없다’(승정원 일기) 그들은 이런 집회에 모여 자신들의 억울함을 공유하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그런 울분이 공유되고 세력화될 때 민란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때문에 이런 집회나 향회는 한국의 저항적 민주주의가 싹틀 수 있었던 중요한 공론장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민란들이 성공하는 예는 드물었다. 그만큼 조선의 통제 수단이 강고한 측면이 있었고, 자연발생적인 민란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19세기 초 서북 지방의 차별에 저항한 홍경래 난이나 19세기 말 동학 농민 전쟁 등에서 수탈당하던 백성들의 저항의 물결이 강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관군 토벌대에 의해 진압을 당해내지 못하고, 주동자들은 하나같이 역적으로 몰려서 죽었다. 수탈과 학정에 저항하고, 새시대를 열고자 한 개벽사상 동학이 민초들의 광범한 지지를 받았지만, 무능한 고종이 끌어들인 외세 일본군에 의해 초토화되는 경험도 겪었다. 일본군의 근대식 무기에 의해 살육당한 동학 농민군들의 무덤이 산을 이루고, 그 피가 강처럼 흐르는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쓰라린 경험을 당했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분노와 원성은 하늘도 달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105년전 이날 이후 전국 방방 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벌어진 3.1 독립운동 역시 18-19세기의 축적된 직접 민주주의의 전통과 애국 민족 운동의 연장 선상에 있고, 그 이후 모든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그것은 한국인들의 내면화된 비판과 저항 의식의 표출이고, 식민치하를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의 강력한 견인차가 되었던 운동이다. 그것은 조선이 오랫동안 구축한 봉건체제에 대한 저항이고,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반제 식민지 독립운동이다. 정신의 개혁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3.1 운동이야말로 근대화의 초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3.1 운동의 정신의 연장 속에 제주의 4.3 사건 과 여순 민란, 4.19와 5.18의 저항 운동, 그리고 최근의 촛불 시위가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서 3.1 운동은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민족 민주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고리라고 본다.


이제는 이런 3.1 운동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측면 이상으로 운동의 정신과 철학 그리고 영향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3.1 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운동이 아니고, 그 운동의 불꽃이 꺼졌닥고 한국의 저항운동이 식은 것도 아니다. 3.1 운동은 중국의 5.4 운동이 일어난 계기를 마련하면서 아시아의 피압박 민족들의 저항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도 3.1 운동의 비폭력 정신에 깊은 감동을 보이면서 '아시아의 등불'이란 표현을 썼던 것이다. 3.1 운동의 희생에서 축적된 에너지는 20세기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이 새로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마침내 세계 10대 국가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된 강력한 에너지로 변환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3.1 운동 105 주년을 맞이하여 선조들의 희생에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그들의 행적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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