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투병기 1

by 이종철

철 지난 코로나에 걸리고 보니까 잊고 있었던 지난 몇 년 간의 공포의 경험이 떠오르는군요. 아프다는 핑계로 돌아다니지 못하는데 '놀면 모해?"라는 심정으로 코로나 투병기를 연재해 보겠습니다.


코로나 투병기 1


지난 3년 코로나가 유행을 하던 시절은 정말로 끔찍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호흡기 바이러스로 인해 대인 접촉은 절대 금물이었다. 위기와 고난의 시기에는 연대와 협력을 통해 극복해 온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대면 상태의 연대 방식을 완전히 깨 버렸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고독을 느꼈다. 거리에는 다들 마스크로 틀어막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대신 인간은 Zoom을 통해 그 빈 공간을 채웠다. 한국의 대학들이 엄청 투자해 세운 대학 건물들은 하나 같이 텅텅 비었고, 오히려 관리 부담만 키웠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서 평생 갈 것이라고 겁박하다시피 했다. 그런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20세기말에 닥친 IMF가 30년은 갈 것이라고 열심히 떠들던 경제 전문가들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코로나로 인한 공포를 최고로 느꼈을 때는 2021년 가을 딸애가 독일에서 귀국할 때였다. 그 당시 유럽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초토화되었다. 딸애는 브레멘에서 벗어나 독일 친구의 도움으로 비교적 사람들이 적은 시골 동네로 옮겨 살았다. 그러다가 귀국 비행기를 탔을 때는 대인 접촉을 완전 차단한 상태에서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다. 딸애를 맞이하러 공항 갈 때에도 자동차 내부를 비닐로 완전 차단한 상태로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까 그렇게 북적거리던 공항이 인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썰렁했다. 미래의 SF 도시 상황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괴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와 공포 때문에 과민반응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 체감으로 느낀 공포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작년에 코로나의 긴 터널을 벗어났다.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저 독감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스크를 벗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 공포의 터널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듯 거리를 채웠고, 국내외로 여행을 다녔다. 아. 세월이 지나니까 그 무섭던 코로나도 사라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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