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철 Aug 21. 2023

나의 글쓰기의 장점


나는 글을 아주 빨리 쓰는 편입니다. 나의 글쓰는 속도는 일반적인 라이터들의 몇 배가 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내 글을 오랫동안 읽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쉽지 않은 글을 그렇게 빨리 쓸 수가 있냐는 것이지요. 나의 글쓰기 속도는 웬만한 일간지 칼럼니스트들 여러 명이 달라 붙어도 따라올 수가 없을 겁니다. 사실 읽는 이들이 부담스러워 해서 그렇지 훨씬 더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빨리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주제에 대한 이해를 빨리 하고, 젊은 이들 못지 않은 타이핑 실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거의 일관된 호흡으로 한 시간에 원고지 2-30매 정도를 후다닥 쓰고, 일단 쓰고 나면 거의 수정하지를 않습니다. 오래 전 작가 이 병주 선생이 신문 연재 소설을 쓸 때 마감 한 시간을 앞두고 신문사 지하 다방에 가서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때 그게 가능하겠냐고 반신반의를 했지만 내가 경험을 해보니 가능하더군요.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누구보다 나는 글쓰기 속도를 중시하는 데, 속도는 파워를 높이고 집중력과 강도를 높여 줍니다.




다음으로 나는 어떤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물론 본업이 철학이고 글쓰기라 철학과 글쓰기에 관한 글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루 넘나들면서 씁니다. 여행기도 쓰고, 문학이나 영화에 관한 글도 쓰고, 사회 비평과 정치 비판에 관한 글도 씁니다. 작년 대선 때는 선거 열흘을 앞두고 매일 같이 30매 이상되는 정치 칼럼을 8편이나 <내외 신문>에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 정치 평론가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저의 칼럼 처럼 쓴 평론가는 없습니다. 저는 이때 그 글을 쓰면서 마르크스의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블뤼메르 18일>을 염두에 두면서 썼습니다. 나는 드물지만 예술 관련 글도 쓰고 한국 사회에서 아주 예민한 종교 이야기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이야기도 씁니다. 오래 전부터 과학 기술에 관한 글도 써왔지만 최근 챗GPT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부터는 AI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여러 편을 썼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의 글쓰기 영역은 대상과 영역을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글이 피상적이라거나 깊이와 통찰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글이 피상적이라는 말은 작가에게 치명적인 모욕입니다. 어떤 이들은 줄 창 특정한 이야기만 쓰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나는 철학을 소수의 전문가들만 이해하는 암호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쉽게 씁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은 어렵고 골치 아픈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현대 철학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쉬운 일상 언어에 기반해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가지고 쉽게 표현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에세이철학'으로 통칭하고 있는데, 이 철학은 제가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개척해왔던 영역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의 민주적인 글쓰기는 나의 철학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단순힌 기술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철학을 한다는 의미는 그저 남의 사상을 끌어와서 설명하고 해석하는 수준입니다. 80년 대 이후 한국의 번역 시장도 급격히 커져서 이제 웬만한 책들은 거의 번역물을 대할 수 있습니다. 철학도 이런 번역에 힘 입어서 고금을 통털어 수많은 고전들을 전문가들의 번역을 통해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철학은 번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독자적인 자기 철학으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나의 '에세이 철학'은 자기 언어와 자기 생각, 자기 삶에 기초한 가장 주체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고, 이 철학에 주목하는 이들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에세이 철학은 디지탈 시대를 끌어갈 미래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현대 판 문맹 퇴치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세종은 "어린 백성이 이르고저 할 바 있어도 쉽게 그 뜻을 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해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습니다. 그 당시 한자와 한문이 지배하던 시대에 먹고 살기 바쁜 일반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배우느라 양반 사대부들처럼 오랜 세월을 투자할 수가 없었지요. 문자는 단순한 표현의 도구를 넘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좌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배와 통치의 유력한 수단이 됩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문자를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들에게 하나의 권력을 쥐어준 것이지요. 나의 글쓰기는 세종의 이런 애민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현대판 문맹'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단순히 글자를 모르는 것이 문맹이 아닙니다. 글을 읽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문해력(literacy) 부족 현상, 자신의 생각이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문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고 했지만, 앎 자체가 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 표현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줄 때 비로소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단순히 가방끈이 길다거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쌓았다고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쓰기는 일반인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글쓰기는 이런 문맹을 퇴치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 해방의 수단입니다. 제가 글쓰기와 관련해 여려 편의 글을 써왔지만 그 밑 바탕에 흐르는 정신은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나는 그것을 디지탈 시대의 문맹 퇴치 사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