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가 <한국의 사상가들 탐방회>를 만들고, 다음에 같은 이름의 카페를 개설했다. 이 모임의 취지는 최치원이나 원효에서 최근의 류영모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의 생가나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서 그들의 사상적 분위기를 느껴보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물음을 제기하면서 나 스스로 해답을 구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그들 사상가의 관련 저서나 연구 논문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지만 생가나 기념관을 직접 방문하는 또 다른 느낌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작업을 하려는가?
내가 이 일을 구상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적인 계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여름 경상남도와 북도를 2박 3일 정도 여행을 할 때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경주에 있는 수운 최 제우 선생의 생가였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었지만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경상도를 다닐 때 직접 가봤다. 그날 답사기는 따로 글을 작성해서 올린 적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반복하지 않겠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냥 책이나 말로만 듣던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가 최 제우 선생 탄생 200 주 년이고, 금년 가을 경 대대적인 행사가 열릴 것이라는 이야기는 덤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튼 최 제우 선생 생가를 방문하면서 그것을 확장해서 한국의 사상가들의 생가나 기념 관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평소 가졌던 의문이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바로 페북에 공지를 내고 나름대로 10여 명의 사상가들을 선별해서 대략 3주에 한 번씩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8월 중순 경우 첫 방문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페북에서 계정 문제로 2주 이상 제한을 당해 부득이 9월 11일 첫 탐방하기로 했다. 첫 번째 탐방은 조선을 디자인한 삼봉 정 도전의 평택 소재 기념관이다.
내가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철학은 서양철학, 그중에서도 독일 관념론이었다. 그런데 수구초심이라고 할까, 몇 년 전부터 동양철학과 한국 철학에 대해 관심이 쏠리면서 그쪽 방면으로 책이나 논문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다석 유영모 선생의 인간관에 관한 논문과 신라 향가 제망매가를 서양의 철학자들과 대화를 시도한 논문도 썼다. 이쪽 방면으로 논문 2편을 썼으니까 최소한 비교 철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비교 철학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동서양 간의 심도 있는 대화를 하면서 새로운 사상을 모색해 보려는 것이다. 내가 수년 동안 에세이 철학을 하면서 얻은 것이 하나 있다. 에세이 철학의 기본 정신은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의 머리로 생각을 하고 우리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오늘날 이 기준에 맞는 철학은 거의 드물다. 이 에세이 철학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동과 서, 고대와 현재, 철학과 비 철학 등 다양한 장르 등을 넘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그런 실험적 글쓰기를 많이 했다. 작년에는 한국의 1970-1990년대에 내가 겪은 좌충우돌 경험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 제1부’를 썼다. 아직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금년 안으로 출판될 것이다. 이런 몇 년 간의 경험을 통해 나에게 동양 철학이나 한국 철학의 언어들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서양 철학을 연구해왔다. 번역도 많이 하고 논문도 적지 않게 썼다. 이런 서양 철학자가 왜 갑자기 동양이나 한국 철학에 관심을 가질까? 수구초심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일단 동양이나 한국의 철학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내용 등이 친숙한 느낌이 들고 그와 관련된 문헌들을 읽다 보면 몸으로 이해되는 느낌도 들었다. 서양 철학을 하면서 늘 남의 언어로 철학을 해왔는데 이제 비로소 우리의 언어로 철학을 하려니까 너무나 다른 것이다. 철학은 무엇보다 언어를 중시하는 데나의 언어와 남의 언어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랫동안 공부를 해왔던 서양의 철학과 언어를 용도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통을 가진 철학들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서로 간의 차이와 동일성을 확인하면서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데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로칼의 차원을 넘어서 글로벌하고 유니버설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으로 서로 다른 전통의 철학과 사상 간의 심도 있는 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는 19세기 근대의 산물인 전문화의 벽에 갇혀서 한 우물만 파는 시대가 아니다. 포스트모던의 기본 정신은 모던이 나누어 놓은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런 경계 중의 하나가 동서의 경계이고 고금의 경계이다. 그런 관점에서 왜 서양 철학자가?가 아니라 서양철학자도 얼마든지 동양과 한국의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생산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상가 탐방회>는 그런 모색의 하나이다.
서양철학자가 한국의 사상을 연구하다 보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일단 약점이자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한문의 장벽으로 인해 1차 문헌을 소화하는 데 큰 장벽을 대한다. 물론 많은 경우 번역서들을 참조할 수 있지만 언어의 한계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따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언어 문제를 넘어서 사상과 철학의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가 있다. 그리고 다른 전통에서 볼 경우 본래적인 전통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보일 수 있다. 네가 일전에 신라의 향가 ‘제망매가’에 관한 논문을 쓸 때 경험한 것이 있다. 내가 보기에 ‘제망매가’는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시가지만 너무나 잘못 알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제망매가’처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표현한 시가가 동서양을 찾아보아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시가와 관련된 논문을 수 십 편 읽어 보았지만 대부분 핵심을 보지 못한 채 주변에서 변죽만 올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서양 철학자의 관점에서 보니까 오히려 이 시가의 깊이와 함의가 잘 이해가 되었다. 말하자면 다른 전통에서 오히려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양철학자의 눈으로 한국의 사상가들을 볼 때는 기존의 전통과는 다른 차원에서 얼마든지 새롭게 접근하고 새로운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움이 기존의 것으로 파악되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고, 기존의 것을 확장하고 보다 새롭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과거의 사상가들의 생각을 단순히 문헌학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 시대에 현재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그런 새로운 대화를 하려는 데 있다.
9월 11일 첫 번째로 시도하는 탐방 대상은 조선을 디자인한 삼봉 정도전 선생이다. 평소 조선에 대해 비판적인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삼봉이 성리학의 이념을 가지고 조선을 설계한 것 자체를 묻고 싶다. 그가 어떤 배경에서 했고, 그가 얼마나 성취했고, 그가 저지른 과오가 무엇인가 등을 얼마든지 21 세기의 관점에서 제기해 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과정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시행착오의 경험이 소통의 깊이를 더해주고 사상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관심 있는 동무들의 참여를 바란다. 함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