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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Sep 07. 2024

세미나의 발표 형식 문제

며칠 전 고고학자 정길선 박사의 귀국을 기념해서 노바 토포스 회원 몇명이 신촌에서 모인 적이 있었다. 무려 4시간이나 진행된 만남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지만 세미나 발표와 관련된 권기환 박사의 이야기가 귀에 남는다. 독일에서 학위를 한 그의 말에 따르면 독일의 세미나나 컨퍼런스에서는 한국과 달리 종이 논문을 거의 배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처럼 논문을 배포하는 사람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거나 아무래도 급이 떨어지는 학자라고 한다. 



발표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15분에서 20분 정도인데 그는 간단한 메모에 기초해서 자기 논문의 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경우 A4 용지 10여 장에 빼곡히 써 있는 논문을 따라가는 것 보다 이해가 훨씬 쉽다. 이렇게 핵심 내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주어지면 거기서 나온 문제들을 가지고 토론을 진행하기도 좋다. 학술 발표회장은 그저 자기 논문을 고백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생각들을 교류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발표회장은 10여 장 되는 논문을 읽고 따라 가느라 정신이 없고, 게다가 시간 압박을 받으면 초짜 발표자들은 패닉에 빠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한국의 발표회장에서 토론은 너무나 짧아서 형식적으로 한 둘 정도 질문을 하고 답변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중간에 논평자가 문제를 정리해주기는 해도 대부분의 청자들은 소외되기가 십상이다. 결국 한국학자들의 두더지 제 굴 파기가 발표회장에서도 똑 같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이제 한국의 세미나나 컨퍼런스도 외국 학계의 선진적인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방법을 활용할 경우 발표회장을 가볼 때 마다 느끼는 답답함이나 소외감을 상당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토론이 활성화되면 발표자의 권위에 쉽사리 굴복하거나 무시하는 현상도 상당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핵심이지 사소한 형식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경향 각지의 수십, 수백개의 발표회의 진행 방식만 바꿔도 한국의 학회들과 학자들의 고질적인 소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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