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철 Sep 12. 2024

향원은 덕의 적이다

鄕愿,德之賊也

<논어> 양화 17장 13 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내 방을 들어오지 않아도 내가 섭섭히 여기지 않을 것은 오직 그 향원뿐이다.향원은 덕의 적이다.”(鄕愿,德之賊也)


사람을 대높고 이렇게 평가를 한다는 것은 보통 민망한 일이 아니다. 향원(鄕愿)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모난 짓을 하지 않고 원만하게 대해서 두루 신망도 높고 덕도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공자가 이런 향원을 '덕의 적'이라고 내놓고 비난을 한 것이다. 맹자는 이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공자의 태도를 변호한다. 


"향원은 비난하려 하여도 딱히 비난할 거리가 없고 풍자하려 하여도 딱히 풍자할 빌미가 없으며 속된 흐름에 동조하고 혼탁한 세상에 영합하여 일상적 삶은 충신한 듯하고 행위는 청렴결백한 듯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지만 그와 함께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덕의 도적이라 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슷하지만 아닌 것(似而非)를 미워한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벼와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달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것과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아악과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자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과 혼동될까 염려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유덕자와 혼동될까 염려해서이다.'(맹자, 7편, <진심장구>)


공자의 진의가 어디에 있던 간에 먼저 맹자의 풀이를 보자. 맹자에 의하면 향원은 인간 관계가 모나지 않고 두루뭉실하기 때문에 딱이 꼬집기도 힘들다. 맹자는 이런 인간을 벼와 비슷한 강아지 풀처럼 다르면서도 같은 척하는 사이비(似而非)로 본다. 향원은 덕을 가장한 자인지라 유덕자와 혼동될 수 있어서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듯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덕의 적'이라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엄연하게 다르다. 그렇게 본다면 맹자는 공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향원은 덕의 적이다.”이라고 한 것은 덕이 없는 자가 덕이 있는 척 가장을 하고, 실제로 덕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숭앙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이중 인격과 이중 생활을 하는 '위선자'(hypocrite)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를 단순히 '사이비'로 규정하는 것은 '위선자'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사이비는 쭉정이에서 알곡을 골라내면 되지만, 위선자는 이런 구분 자체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위선자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공자는 단순한 차이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덕의 적'이라 비난한 것이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유덕하고 유선한 인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겉 행동을 보면 일반인들이 쉽게 구분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종교인들 중에 특히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널리 인정받는 정치인이나 종교인들, 혹은 교육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위선자'라는 말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면 인간 관계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솔직히 이중 인격이 없는 사람, 내외가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느 정도는 위선을 할 때가 있다. 그런 소극적 의미의 위선을 가지고 공자가 '덕의 적'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적극적으로 위선을 가정해서 타인의 영혼을 유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앞에서 언급한 정치인이나 종교인 그리고 교육자들 가운데 그런 인간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소극적 위선이 아니라 세상을 기만할 수 있는 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도 저런 적극적 위선자, 세상에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자, 지선이지만 사실은 지악인 자가 있다. 세상이 그의 진실을 알게 되면 정말 놀랄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위선을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 자신도 고민이다. 과연 그 사람이 누구일까?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PS. 내가 공자의 이 작은 말을 해석하기 위해 기존의 해석들을 살펴 보았는데 참으로 가관이다.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식의 가관이다.해석이나 논점을 일탈한 해석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일반인의 해석들이 아니라 맹자에서부터 유학계의 거두인 주희와 율곡 그리고 다산의 해석들이 그러하다. 현대의 학자들이 써 놓은 논문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해석들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학문은 어떤 경우든 믿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비판, 비판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삼봉 정도전 기념관 탐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