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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모든 것

by 이종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ven Hawking)의 전기를 다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 2014))이라는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천재 물리학도인 호킹은 근무력증이라는 병에 걸리면서 앞으로 길어야 2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낙심한다. 때문에 그는 사귀던 연인 제인을 곁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제인은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그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한다. 제인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으로 스티븐은 오랜 기간 삶을 이어가면서 시간에 관한 이론을 완성한다.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는 무려 천만권이 팔렸다. 한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에서 헌신적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힘이 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 중에 몇 가지 의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첫번째는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에 관한 이야기다.


"우주를 설명할 때 감자 하나로만 하면 쉽죠.


감자만 있으면 우주의 시작이 있고, 그래서 신의 존재가 입증이 돼요.


그런데 완두콩 하나가 끼어 들면 모든게 엉망이 되죠.


감자와 완두콩은 서로 모순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주사위를 싫어 했어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이론을 완두콩으로 설명하는 것과 주사위 놀음 같은 우연성을 싫어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재밌다.


두번째는 호킹이 시간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우아하고 단순한 공식을 발견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통일장 이론을 정립하는 일에 매진했다. 호킹이나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동양에서는 진리나 도는 하나이지만 거기로 가는 길은 여러가지다라는 말을 한다. 나는 진리나 도는 아주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평범해서 사람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옛 선사들은 "물깃고 밥하는 데 도가 있다."고 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나의 '에세이철학'이 추구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평범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 삶의 의미가 있을 수 없는 그것. 바로 그런 것이 진리가 아닌가? 우주의 법칙도 이런 '단순성'(simplicity)에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호킹이 청중들에게 강연을 할 때다. 물리학도인 그는 끊임없이 신의 존재에 대한 불신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성공회 신자인 그의 아내 제인도 호킹의 이런 태도를 바꾸려고 애를 쓴다. 호킹이 시간의 시초를 이야기할 때다. 만일 시초가 있다면 신의 존재가 전제되는 것이 아닌가 제인이 물으면서 자신이 기뻐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때 호킹은 매우 기뻐해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칸트의 주장처럼 믿음과 과학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 굳이 신의 존재를 말하고자 한다면 믿음을 위해 과학을 예비할 뿐이다. 한 청중이 묻는다.


"신을 안믿는다고 했는데 도움이 되는 삶의 철학이 있나요?"


"우린 천억개의 은하계 주변의 평범한 별의 주위를 공전하는 자그마한 항성에 살고 있지요. 하지만 인간의 문명이 시작한 이래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탐구해왔습니다. 우주의 경계 조건에 뭔가 특별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경계가 없다는 것, 그보다 특별한 건 없죠. 인간의 노력엔 어떤 한계도 없습니다. 우린 모두 다릅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린 뭔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물리학도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주 심한 장애를 가지고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삶을 살아왔다.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자신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깨달음이라 할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고, 생명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물리학자, 바로 그 사람이 스티븐 호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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