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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젤렌스키

by 이종철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회담 결렬 장면에 장면에 많은 사람들이 외교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경악하고 있다. 사인들끼리도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과 지옥같은 러-우 전쟁 3년을 치르고 있는 대통령 간에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양국의 대통령의 지금까지의 성향과 행태를 지켜 보았다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도 아니다. 다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트럼프나 젤렌스키 모두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 전쟁을 위해 지금까지 미국이 물량적으로 엄청나게 지원을 했으니까 당연히 우크라이나가 고분고분하게 따라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반면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참략 희생자이자 지난 수년 동안 조국이 파괴되고 국민이 희생당한 전쟁을 치뤘음에도 자신들이 휴전 협상에서 패싱당하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간에 이해 관계가 다른 상태에서 트럼프는 욱박질렀고, 젤렌스키는 기죽지 않고 저항한 것이다. 하지만 양국 간의 관계가 이 사건으로 결렬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어떡하든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싶을 것이고, 젤렌스키는 미국의 엄청난 압박을 피하고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모종의 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그나마 이 과정에서 유럽 각국들의 우크라이나 지지가 힘이 될 것이다.


물론 국제 정치의 현실은 힘과 자국이익이 두 축을 이룰 정도로 냉엄하다. 하지만 이런 힘과 국익이 표현되는 방식은 외교라는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트럼프는 무역 관세나 군사 지원 같은 모든 분야에서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있다. 자신들이 세계 최강국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의 협상 결렬로 미국은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유럽의 경계심도 높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무자비하게 진행되다 보면 미국도 파탄을 겪게 될 것이고, 그러면 2-3년도 안 돼 다시 트럼프 탄핵하자는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가 머리가 좋아도 그 좋은 머리가 자기 안의 폐쇄회로 속에서 무한 반복 한다면 결국 헛똑똑이가 될 뿐이다. 그런 행위는 좋은 머리가 하는 일이 아니다.


사실 국가와 국민을 생각했다면 젤렌스키는 엄청난 국력과 군사력을 생각해서 진작에 러-우 전쟁에서 항복의 깃발을 들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애국심으로 포장된 독기와 러시아와 직접 전선을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은 유럽 각국들 및 미국의 지원으로 이 전쟁이 지탱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은 우크라이나와 그 국민들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 국토가 완전 초토화되고, 전쟁터로 내몰린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 그리고 자신들이 살던 집과 도시가 파괴되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포탄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 과연 무엇이 이것을 위무하고 보상해줄 것인가? 젤렌스키의 눈에는 오직 그런 희생만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트럼프라 할 지라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를 보면 6.25 전쟁 때 미국과 상대하던 이승만이 연상된다. 미국이 이승만을 휴전 협상에서 배제하자 이승만은 미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거제도 반공 포로들을 다 풀어주었다.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협상 결렬이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지만, 오히려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상의 조치가 필요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다. 협상 테이블을 새롭게 꾸밀 수 밖에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유럽 등 모두가 낡은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카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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