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by 이종철

오늘이 동지군요. 팥죽먹는 날이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팥죽 사진을 보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지는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 서서히 낮의 길이가 커지게 됩니다.


주역에서는 동지를 24번째 괘인 ‘지뢰복’(地雷復)으로 묘사합니다. 이 괘는 맨 밑의 초효만 양효고 그 위의 다섯 가지 효가 모두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섯 음효가 위에서 누르는 상태에서 양효가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상태이지요. 음기가 꽉찬 상태에서 미약하나마 양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라는 도덕경의 말처럼 모든 것은 극에 달하면 정반대의 운동으로 균형을 맞추려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첫걸음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런 움직임을 시사하듯, 첫 양효를 설명하는 효사는 不遠復입니다. '머지 않아 돌아온다'는 말이지요. 어둠이 깊을 수록 한 줄기 빛의 힘을 더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지뢰복.png


조선의 명기 황진이는 동짓날을 빗대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다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동짓날 기나 긴 밤을 그저 외롭다 쓸쓸히 한탄만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절절한 마음을 고이 간직했다가 임을 향한 사랑에 더하겠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슬픔과 고통을 미래의 희망과 사랑을 위한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습니다. 시인의 통찰은 자연의 필연성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일 깨운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사회건 우주건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합쳐질 때 결실을 맺는 것이지요.


올 한 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무척 힘들고 쉽지 않은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련이 언제 끝난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지뢰 복 괘가 가르키듯 '멀지 않아 돌아 온다'( 不遠復)는 믿음이 필요할 때라고 봅니다. 어둠이 가장 짙은 곳에서 빛이 시작되듯, 지금의 고단함은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복(復)'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24번째 괘가 지나면 다시 1번 괘로 순환하듯, 우리의 삶도 이 긴 밤을 지나 다시금 찬란한 태양의 계절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불원복(不遠復), 그 희망의 귀환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믿습니다.동짓날, 파주에서 나는 그런 희망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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