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로 흐르는 빛

by 이종철

겨울의 초입, 도시 외곽의 낡은 공방 ‘수선하는 마음’에는 세 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곳은 망가진 기물을 고치는 장소를 넘어, 생의 한복판에서 꺾여버린 이들이 서로의 부서진 틈을 응시하며 머무는 정거장이었다.


민우는 1년 전 전장에서 돌아온 후, 줄곧 ‘시간의 미로’에 갇혀 있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철조망 작업을 하다가 지뢰를 밟아 오른 쪽 발목을 잃었다. 재활 치료를 하면서 의족에 의지해 걷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마음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는 사포질을 멈추고 거친 나무 표면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가끔은 억울합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내 평화는 이렇게 무참히 깨져야 했을까. 부서진 식탁은 고치면 그만이지만, 사라진 다리와 찢긴 기억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합니까?”


곁에서 묵묵히 대패질을 하던 노동자 박 씨가 멈춰 섰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척추를 다친 후, 더 이상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박 씨가 민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민우 씨, 나도 처음엔 내 몸이 배신자로 느껴졌네. 평생 정직하게 일한 대가가 고작 이 마비된 감각뿐인가 싶어 분노했지. 그런데 말이야, 이 나무를 보게. 옹이가 있고 갈라진 틈이 있는 나무일수록 나중에 가공해 놓으면 그 결이 더 깊고 오묘해지거든. 우리의 상처도 어쩌면 우리 인생의 ‘결’이 되어가는 중이 아닐까 싶네.”


공방 주인 희수가 휠체어를 밀어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문턱을 몸소 겪으며 살아온 이였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아버지의 공방을 물려받은 후로는 이곳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는 따뜻한 찻잔을 건네며 대화에 깊이를 더했다.

“철학자 헤겔은 "정신은 오직 자기 자신 안에서 완전한 파멸을 찾아냈을 때에만, 비로소 제 갈 길을 찾는다"고 했어요. 그는 이것을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무는 일’이라고 불렀죠. 사람들은 대개 고통을 빨리 지워버려야 할 오물처럼 여기지만, 사실 정신은 그 고통(부정)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통합할 때 비로소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고양(Erhebung)되는 법이니까요.”


민우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은 이 비극이, 정말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는 말씀인가요?”


희수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단순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해지는 것’이죠. 헤겔에게 진리란 ‘전체’(Das Wahre ist das Ganze)니까요. 기쁨만 있는 삶은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해요. 민우 씨의 상실과 박 선배님의 통증, 그리고 저의 이 휠체어까지 포함된 것이 우리 삶의 ‘전체’입니다. 이 부서진 조각들을 외면하지 않고 식탁의 다리로, 상판으로 맞추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이라는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는 거예요.”


희수의 말이 다른 두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희수의 말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려는 의미가 그들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아다. 박 씨는 희수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대패를 잡았다.


“그동안 내가 생각한 행복은 ‘아무 문제 없는 상태’였던 것 같군. 그런데 여기 와서 자네들과 대화하며 깨닫네. 진정한 평화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함께 비를 맞으며 서 있을 수 있는 용기라는 걸 말이야.”


민우 역시 사포질을 재개했다.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전쟁터에서의 평화는 적이 죽어야 오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평화는 내 안의 적개심과 화해하고, 타인의 상처에 내 손을 포개는 순간에 있군요. 행복은 거창한 승전보가 아니라, 오늘 저녁 이 식탁이 수평을 이룰 때 느끼는 소박한 안도감이었어요.”


작업이 끝날 무렵, 세 사람은 수리가 완료된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군데군데 덧댄 자국이 역력했지만, 그 덕분에 식탁은 이전보다 훨씬 견고하고 독특한 기품을 풍겼다.


희수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레너드 코언이라는 시인은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빛은 바로 그곳으로 들어온다."고 했죠. "우리의 부서진 틈이야말로 희망이라는 빛이 스며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공방 밖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그들의 몸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공방 안의 공기는 세 사람의 대화와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부서진 조각들이 서로의 등을 맞대고 선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도 평화로운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의 손길로 되살아난 식탁은 도시 변두리의 어느 작은 공동체 쉼터로 보내졌다. 그곳은 갈 곳 없는 독거노인들과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나누는 자리였다.


며칠 뒤, 희수는 그곳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을 민우와 박 씨에게 공유했다. 사진 속에는 삐걱거리던 식탁 위에 따뜻한 국밥 그릇들이 놓여 있었고, 아이들이 그 위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덧댄 나무 조각과 거친 사포질의 흔적은 그 자체로 문양이 되어 사람들의 팔꿈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민우는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최전방에서 늘 총기구를 만지던 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손이 누군가의 밥상을 지탱하는 가구를 고쳤다는 사실에 그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 들었다. 그는 더 이상 밤마다 들려오는 환청에 시달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밀어낸 사포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파도 소리로, 또 누군가에게는 평화로운 일상의 배경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박 씨는 공방의 보조 목수가 되었다. 비계 위에서 떨어졌던 그날, 그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제 지면 위에서 가장 낮은 곳의 물건들을 돌보며 새로운 삶의 근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무엇을 생산하느냐'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와 곁에 있느냐'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희수는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공방의 문을 연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문턱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마찰점이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공방을 청소하며 헤겔의 또 다른 문장을 떠올렸다. "지혜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 인생의 태양이 저물고 어둠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비로소 그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응시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수리된 식탁 위에는 이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쌓여갈 것이다. 상처 입은 병사와 멈춰 선 노동자, 그리고 휠체어 위의 철학자가 맞댄 그 뜨거운 온기는 식탁의 결을 타고 이름 모를 이들에게로 번져 나갔다. 행복은 완성된 교향곡이 아니라, 부서진 악기를 들고 함께 맞추어가는 서툰 합주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합주가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의 공방에는 언제나 계절보다 이른 봄이 머물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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