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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Aug 19. 2023

왜 한국인들은 자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는가?


Why Koreans series 4탄



한국인들이 자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에 당장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한국 사람들처럼 자기 감정을 멋대로 털어 놓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 한국인들은 자그마한 불편도 참아내지 못하고, 주문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당장 항의를 하지 않는가? 한국 정치가 아주 시끄러운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 감정을 너무 드러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사실 이런 항의도 일리는 있다. 한국인들은 점점 자그마한 불편이나 기다림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 국문학자 조윤제 선생은 한국인들을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의 5천년 역사를 되돌이켜 보면 고난과 환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대륙의 국가들의 무수한 침략을 당했고, 일본의 해적과 임진 왜란 등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과거 몽골족이나 거란족 그리고 여진족이 한 때 크게 융성했지만 지금은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연명하고 있거나 소국가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기준으로 판단했으면 한국도 당연히 국가의 정체성을 상실했을 수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일제 식민지 체제 하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한국인들의 끈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은근한 끈기가 한국인들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한국인들은 점점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날 이런 말을 사용하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지 모른다. 그만큼 지난 한 세대를 지나면서 한국인들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인들이 여전히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는 상급자를 앞서서 절대 표현하지 못한다. 상급자가 말좀 해보라고 해도 주변의 눈치를 많이 살피다가 마지 못해 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인들의 회의 석상하고 절대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과거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 회견을 할 때 말 좀 해보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어도 나서는 기자가 없었던 해프닝이 벌어졌다. 해프닝이라고 말은 했지만 어쩌면 한국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지 모른다. 기자들은 말과 입으로 먹고 사는 부류인데 이들도 집단에 속할 때는 제 속마음을 드러내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젊은 학생들을 접하는 강의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질문 좀 하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 닭 쳐다 보듯 멀뚱 거릴 뿐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다. 때문에 강의실에서는 막연하게 하라고 하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지명을 해야지 그나마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과거 세대는 자기 표현법을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 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오랜 문화적 전통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속담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거나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것은 함부로 자기 의견을 내기 어렵고, 일단 내면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이 많다는 의미일 수 있다.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도 먼저 나서는 리스크 보다는 안정적으로 중간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한국적 처세술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이런 태도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단톡방에 들어가보면 알 수가 있다. Katalk는 워낙 강력한 메신저에다 쉽게 사용할 수 있어서 한국인들 대부분은 고만고만한 단톡방에 다 들어 있다. 초등학교 동기들에서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동기방이 있고, 이러 저런 인연만 있으면 다 단톡방을 만들어서 조석으로 메시지나 사진을 교류한다. 학자들도 수많은 학회들을 단톡방을 통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런 단톡방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그것은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단톡방에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저런 메시지나 유튜브 동영상들을 퍼 나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기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관혼상제나 특별한 사건이 있을 경우만 드러난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두더지 두들기는 게임이 연상이 된다. 머리를 내밀 때마다 두더지를 때리면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평소 쥐죽은 듯 있다가 갑자기 튀어 나오는 모습이 두더지를 연상케 한다. 이런 태도는 이른바 지식인 학자들 방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나는 이런 방에 그냥 있기가 뭐해서 내가 쓴 글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사실 글도 하나의 보시나 다름 없고, 매일 같이 글을 올리는 것은 그 자체가 보통의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닌 만큼 하나의 보살행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받고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나쁜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삶과 세계, 인문 교양과 학술 등 다양한 부분의 깊이 있는 글이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글이다. 결코 자뻑이 아니다. 이런 글을 아무리 올려도 거의 반응이 없다. 흔한 말로 '좋아요'라고나 수고했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만 올리라는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 주고 뺨맞는 격이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 이들은 간단한 자기 감정 조차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구나. 오히려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불편한 감정들을 대한다고 내가 위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나도 적응이 안 된다. 이런 사정은 학자들과 교수들 단톡방에서도 반응이 다르지가 않다. 내가 전문학회의 학자들과 모 대학의 교수들 단톡방에서도 글을 올리면 말이 많이 들린다. 그래도 점잖은 서생이라 항의는 못하고 총무나 회장을 통해 말을 전해오고, 또 개인 톡으로 삼가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일반인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학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학자들은 어떤 경우든 남의 글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게 직업인데, 한국의 학자들은 비판이 아니라 '외면'하는 것이다. 한국에 전문 학회들이 수 없이 널려 있고, 컨퍼런스들이 많이 열려도 제대로 된 논쟁이 없는 것은 아마도 이렇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고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마디로 주체성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인들은 속마음(혼네)하고 겉마음(다테마에)을 철저히 분리 시키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런 두 가지 마음 사이에 선을 분명히 그어 놓고 있기 때문에 처음 본 사이에는 절대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들은 조금만 마음이 맞아도 바로 속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들이 많다. 자기 패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 관계에서 자기 만의 세계, 주체성을 유지하는 면이 많은 것이다. 한국인들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타인들의 감정에 휩쓸려 버릴 때다. 이때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감정 표현이 집단적으로 격렬해진다. 자기 감정의 주체성이 없는 전형적 태도이다. 한국에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깃발 들고 데모하는 대부분이 이런 집단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발달한 '눈치'는 이런 집단 감정을 빠르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알아서 기라"는 눈치는 빨리 분위기 파악해서 편승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이제 한국인들도 더 이상 남의 감정만 살피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 감정 표현에 익숙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선뜻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인들여, 좀 더 자기 감정을 표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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