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여행하기에 아주 좋다. 코로나 때문에 수년 동안 고생을 했던 사람들이 틈만 나면 산과 강, 그리고 바다로 놀러 다니고, 좀 더 여유가 있는 이들은 해외로도 많이 놀러간다.
나 역시 근거리로 가끔씩 여행을 다녀 오지만, 그것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다. 나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하고, 어떤 경우는 근처의 카페로 가서도 작업을 하고 동네 도서관으로 가서도 작업을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뒤에는 논밭이 있어서 전원주택이 부럽지 않다. 늘 이곳에 있다가 어쩌다 서울로 나들이를 가면 골치가 아프다. 이곳에는 나같은 쾌락주의자들이 즐길 수 있는 정원 안에 온갖 것들이 갖추어져 있다. 이 곳에 있으면 별로 나가고 싶지 않고, 집에만 있어도 전 세계를 나들이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이 있고,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도 있고,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다. 얼마든지 생각나는 대로 책을 볼 수 있고, 네트웍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어떤 논문이든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보아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 쓰고 싶으면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글쓰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내가 사용하는 다양한 글쓰기 시스템은 국내 어떤 학자들도 쉽게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인데, 이런 것들을 내가 직접 내 손으로 구성했다.
공부만 하면 기가 머리로 뻗혀서 돌아버릴 수도 있다. 이런 기를 풀기 위해 조선의 선비들은 책을 한 권 띠면 벗들과 책걸이를 하곤 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별로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운동을 열심히 한다. 이곳에는 운동 시설-사실 시설이라고 말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아령이나 덤벨, 트롬벨, 턱걸이 봉, 배젖는 전신 운동기계 등 비교적 간단한 것들이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사실 내 입장에서 볼 때는 필요한 것 모두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도저히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로마의 쾌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원에 갇혀서 소일했었지만, 현대의 쾌락주의자의의 정원은 외부와 얼마든지 연결되고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안에 있어도 밖에 있고, 밖을 다녀도 다시 안이 그립다. 나는 이곳에서 90살이 될 때까지 야전에서 전투를 치르듯 열심히 투쟁하듯 글을 쓸 계획을 세워 놓고 있고 또 매일 매일 그렇게 쓰고 있다. 이러니 내가 다 작가인 버틀란드 러셀보다 더 많이 쓰겠다는 이야기가 허언은 아닐 것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한가한 소일 거리가 아니라 비오듯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벌이는 싸움과 같다. 유라시아 대륙 고고학자인 나의 젊은 친구 정박사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오늘도 열심히 헤매고 있지만, 나는 나의 집과 내 마음 속이 유라시아 대륙 못지 않은 거대한 여행처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제대로 쓰지도 못할 것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나는 제대로 소유한 것은 없어도 100% 쓰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기 손에 떡을 쥐고 있어도 그것을 모르고 늘 박탈감을 느끼고 불행해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즐길 줄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