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대에게 가는 먼길 008

by 이종철

008. 내가 광주 학살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사회에서가 아니라 중부서 보호실에서였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보도 통제된 일간지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을 통해 간간히 광주 학살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진상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을 통해 계엄 철폐 데모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은 초여름의 햇살이 밝게 비추던 일요일이었다. 나는 그때 새로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 있었다.


“뭐라고?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 조용히 해. 잠깐 내 말 좀 들어줘. 내가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한 게 아니야.”


“아니, 지금 시국이 어떤 상황인데 그런 생각을 해? 너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 줄 알아? 그 행동 하나로 인해 너의 인생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 봤어. 어떻게 이기적으로 네 생각만 하냐? 너의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그래, 나도 그 점을 충분히 생각했어. 이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하나님에게 울면서 기도했어. ‘주여, 이 잔을 내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주소서’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간절한 기도 끝에 내가 얻은 대답은 가라, 네가 선택한 길을! 이었어. 이런 결정을 내리고 나니까 오히려 내 마음이 아주 차분해졌어. 그러니 나의 이런 심정을 친구인 네가 이해를 해줬으면 해.”

친구 **하고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 ‘아가페’라는 서클에서 만났다. 그 후 우리는 그 써클을 탈퇴했지만 그와 나는 서로 죽이 잘 맞아 계속 만났다. 나는 그가 다니던 금호동 교회 청년회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렸고, 나중에는 아동 급식 빵 사건을 풍자한 사회극 시나리오를 써서 교회의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광주 사태 이후 갑자기 찾아와서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데모해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정적으로 그에게 동조는 해도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일단 결심한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달걀을 가지고 바위에 내리친다고 하면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큰 바위도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거사 1주일을 앞두고 나에게 일방적인 통보 비슷하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가 폭탄선언을 하고 간 뒤로 내 머리가 아주 혼란스럽다. 나는 그 당시 교회에서 만난 한 여성과 막 사랑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친구가 기름통을 메고 불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하니까 더 대책이 서지 않았다. 이제 공은 나에게 넘어왔고, 내가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이 사실을 친구 가족들에게 알려서 그의 거사를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외롭게 역사의 짐을 지고 가는 친구의 거사에 동참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미 마음이 굳어진 친구의 결심을 더는 어떻게 막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같이 다녀 보지 않은 새벽 기도를 나가서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이런 신심이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그저 열심히 기도를 통해 물었다. 그때는 잠도 하루에 서너 시간도 자지 않았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여전히 나에게는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철학을 공부할 때 배운 딜레마(Dillema)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닷새쯤 되었을 때다 새벽에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데 갑자기 눈앞에 떡이 보인다. 그것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냥 사라져 버렸다. 일종의 헛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간절한 기도 속에서 접한 현상이라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그 여성에게 이야기하니까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말해준다.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하나로 5천 명의 사람을 먹였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꿈보다 해몽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마음을 굳혔다. 친구의 거사에 동창하리라. (이어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대에게 가는 먼 길 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