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의 국경 없는 연애 스토리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
서울, 금요일 저녁. 퇴근길의 인파가 역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환기구 틈으로 섞인 지하철 바람이 유난히 축축하게 느껴졌다.
준호는 무심하게 마스크를 고쳐 쓰며 인우와 약속한 장소를 향해 걸었다. 번화가 중심, 오래된 독립영화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한 곳. 스크린도 작고 좌석도 낡았지만, 인우가 자주 가는 단골이기도 했다.
영화 시작 15분 전, 인우는 이미 매표소 앞에 도착해 있었다.
"왔나."
부산 억양이 살짝 섞인 목소리.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옆에 섰다.
"이 영화, 네가 고른 거냐?"
"응. 대사 별로 없고, 화면 위주야. 그냥, 조용한 영화."
준호는 그 말이 어쩐지 자신을 배려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 둘은 팝콘도 음료도 없이 매표소를 지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에 첫 장면이 떴다. 초원의 바람, 말을 타는 사람들,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장면. 대사는 거의 없었고, 배경음만 흐르고 있었다.
영화는 <콜롬비아나>였다. 분위기와 공간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하지만 조용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액션이 많은 영화였다. 그러다 문득, 준호는 영화 속 도시 풍경을 바라보다가 낯선 단어 하나에 마음이 머물렀다.
콜롬비아.
화면 속 어딘가에 적힌 단어가 그를 잠시 붙잡았다. 그는 그곳을 가본 적도, 특별히 알고 있는 것도 없었지만, 그 이름엔 왠지 모를 이질적이고 아름다운 울림이 있었다. 소리의 질감,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 먼 나라의 바람, 혹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따뜻한 빛. 그 순간, 준호는 머릿속으로 그 나라의 골목길, 시장의 풍경, 따스한 아침 빵 냄새를 떠올렸다. 모두 그의 상상이었지만,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곳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영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스크린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흐른 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이 천천히 켜지고, 둘은 조용히 극장을 나섰다. 서늘한 공기에 숨이 약간씩 흩어졌다.
"밥 먹고 갈래?" 인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응."
조용한 밥집을 찾았다. 국숫집. 멸치 국물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국수를 먹었다. 한참을 말없이 먹다가, 인우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 요즘 좀 그렇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모든 게 좀... 납작해. 잘 살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 정작 아무것도 아닌 거 같고."
그 말에 준호는 작게 웃었다.
그 말, 요즘 나 하루에 세 번쯤은 해."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아주 작은 안도가 있었다. 서로에게,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둘은 천천히 골목길을 걸었다. 번화가에서 멀어질수록 사람 소리는 줄어들고, 밤공기가 깊어졌다.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말 안 해도 옆에 있는 느낌."
인우의 말에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함께 있는 밤. 바람이 불고, 길 끝의 가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내일 뭐 하냐?"
"글쎄. 좀 쓸 수 있으면 좋겠고. 아니면 그냥... 또 하루 지나가겠지."
"같이 써볼래? 우리 집 올래? 널 위해 남겨둔 자리 하나 있다."
그 제안에 준호는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내일 갈게."
그 대답은 평소의 그였다면 쉽게 하지 못했을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 조용한 영화관과 멸치 국수의 밤은 그를 조금은 유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없이 걸었다.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조금, 다시 세상에 닿고 싶어진 밤이었다.
밤풍경이 그래도............ 이쁘네
A pesar de todo, el paisaje de la noche sigue siendo hermoso.
모든 것을 지나도, 밤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