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광장 끝에서 시작된 마음

9년간의 국경 없는 연애 스토리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

by 양원창

3장.광장 끝에서 시작된 마음


광장 앞


광장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흘러넘쳤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 위에는 작은 종이 깃발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축제의 열기와 햇살이 공기를 반짝이게 만들었다. 스테파니는 약속한 시각보다 몇 분 늦게 도착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단정한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고, 어깨에 멘 가방끈을 바르게 조정하며 광장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익숙한 두 얼굴을 찾았다. 미셸과 니콜. 둘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중앙 무대 옆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니콜은 손에 솜사탕을 들고 있었고, 미셸은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팸플릿을 꺼내 축제 일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스테파니는 천천히 걸어가 그들 앞에 섰다.


“늦었네.” 니콜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3시까지라고 했잖아.” 미셸이 웃으며 대꾸했다.

“3시, 맞아. 지금 3시 2분.” 스테파니가 무표정하게 시계를 가리켰다.

“정말… 자매끼리 시간으로 싸우는 것도 웃기다.”


니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 광장을 바라보았다.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지역 전통 춤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원색의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북소리에 맞춰 돌며, 손에는 꽃잎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 몇 개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런 건 자주 해도 좋을 것 같아.” 미셸이 말했다.

“응. 일상이 좀 더 환해지는 느낌.” 니콜이 동의했다.


스테파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축제라는 단어는 그녀에게는 조금 생소했다. 밝고 시끄럽고, 때론 감정이 과하게 드러나는 공간. 하지만 이렇게 두 동생과 함께 있으니, 그녀도 조금은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틈 사이, 간간이 전통 음식 냄새가 흘러왔다. 튀김, 구운 옥수수, 그리고 익숙한 아레빠의 향기.


니콜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니들, 나 먹거리 부스 좀 돌고 올게!”

“같이 가자.”


미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테파니를 바라봤다.


“너도 가?”


스테파니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직 여기 있을래. 사람 구경 좀 더 하고 싶어.”


두 동생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스테파니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 안에는 그녀가 요즘 듣는 강의에서 적어둔 메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마음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북소리와 웃음소리, 음악 소리가 배경처럼 흐르자, 그녀도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서 아이들이 춤을 추고, 어른들이 손뼉을 치며 웃는 모습이 마음 어딘가를 흔들었다. 한편, 미셸과 니콜은 부스를 돌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있었다. 작은 접시에 담긴 튀김과 수프, 과일 주스를 손에 들고,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콜은 과하게 튀긴 바나나칩을 먹으며 인상을 찌푸렸고, 미셸은 그런 동생의 표정을 보며 깔깔 웃었다.


“이렇게 웃는 너, 오랜만이다.” 니콜이 말했다.

“그랬나?”

“응. 예전보다 더 자주 웃어.”


미셸은 잠시 멈춰 섰다. 축제의 한가운데, 알록달록한 천막 아래에서. 그 말이 마음 깊은 곳에 내려앉았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해는 천천히 광장 위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노을빛이 천막 위로 스며들고, 바람은 약간 차가워졌다. 사람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지만, 하루의 끝이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스테파니는 바람에 흩날리는 전단지를 바라보다가 미셸에게 말했다.


“이다음엔, 니콜이 제일 먼저 어른이 될지도 모르겠네.”

“왜?” 미셸이 묻자, 스테파니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기 마음을 제일 먼저 인정하는 사람이, 어른이잖아.”


니콜은 뭐라는 거냐며 눈을 굴렸지만, 그 말이 왠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세 자매는 광장의 구석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말없이 주고받는 눈빛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셋이지만, 그날만큼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제의 마지막 무대가 시작되었다. 지역 댄스팀의 공연. 무대 뒤편에서는 아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음악이 시작되고, 무대가 빛으로 가득 차자, 광장 전체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알록달록한 천막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전통 음악에 맞춰 사람들의 발끝도 경쾌해졌다. 옥수수와 치즈, 구운 고기의 향기가 엉켜 공기 속을 헤집었다. 광장을 누비는 사람들의 얼굴엔 기대와 웃음이 가득했고, 그들 사이에서 세 자매도 환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언니, 언니, 이거 봐!” 니콜이 손에 쥔 꼬치구이를 흔들며 미셸을 불렀다.

“고기 엄청 부드러워. 미쳤어 이거!”


미셸은 웃으며 그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양념은 달짝지근했고, 숯불 향이 진하게 감돌았다.


“진짜네. 근데… 네 입술에 양념 묻었어.” 미셸이 손가락으로 톡, 닦아주자 니콜은 쿡쿡 웃으며 말했다.

“우리 자매 맞지? 너무 드라마 같잖아.”


스테파니는 그들 곁에서 조용히 웃었다. 평소보다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녀는 거리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를 잠시 바라보다, 작게 말했다.


“어릴 땐, 이런 데 오면 너무 시끄럽고 정신없어서 싫었는데… 오늘은 좀 다르네.”

“왜? 오늘은 언니가 덜 삐딱해서?”


니콜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스테파니는 픽 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우리가 같이 있어서 그런가 봐.”


그 말에 잠깐, 셋의 눈이 서로를 바라봤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살짝 날렸다. 잠시 후, 그들은 광장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종이그릇에 담긴 튀긴 옥수수볼과 살사, 망고 주스를 나눠 마시며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거리악사가 아코디언을 켜며 ‘La Vida es un Carnaval’을 연주했다. 사람들의 박수와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제야 스테파니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미셸.”


“응?” 옥수수볼을 입에 넣던 미셸이 고개를 들었다.

“니콜… 요즘 말이야.”

“왜? 또 뭐 사고 쳤어?” 미셸이 웃으며 되물었지만, 스테파니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그냥… 요즘 자꾸 스페인 유학 얘기하잖아.”


그 말에 미셸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니콜은 반쯤 누운 채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지만, 두 언니가 자신을 바라보는 낌새에 고개를 들었다.


“또 내 얘기야? 뭐야, 내가 뭘 어쨌는데.”


스테파니가 부드럽게 물었다.


“진짜 갈 거야?”


니콜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평소답지 않게 조용히 대답했다.


“… 아직 고민 중이야.”

“근데 가고 싶긴 하잖아.”


미셸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니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응. 무섭긴 한데… 뭔가,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만 있는 것 같아서.”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나무 가지들이 바스락거리며 서로를 흔들었다.

스테파니는 그런 니콜을 오래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했다.


“니콜. 나도 그 마음, 좀 알아.”

“언니가?”

“응. 나도 한때는… 여기 말고, 더 먼 곳을 꿈꿨어. 근데 그냥 참고 사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야.”

“그럼… 가지 말란 말이야?”


니콜의 눈에 작은 긴장이 비쳤다.

스테파니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단지, 네가 혼자라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그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미셸은 두 사람 사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 같이 스페인 가자는 거야?”

니콜과 스테파니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고, 미셸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주스를 마셨다.

“농담이야. 근데, 만약 간다면… 내가 가기 전에 꼭 너 좋아하는 그 반데하 빠이사 먹으러 데려가줄게.”


니콜은 킥킥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 유학 전야제로 거기서 파티할래!”


스테파니도 미소를 지었다. 순간은 짧았지만, 그 안엔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다정함이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고, 그 바람 속엔 각자의 꿈과 두려움, 그리고 작게 피어나는 용기가 실려 있었다. 축제는 계속되었고, 셋의 웃음은 조금 더 커졌다.



<햇살 아래, 세 자매의 마음엔 서로의 온기와 작게 피어나는 용기가 머물렀다.>

<Bajo el sol, en el corazón de las tres hermanas, habitaban el calor mutuo y un pequeño brote de valentí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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