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언어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같은 말을 하지만, 그 말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 언어의 한계, 관계의 시작
가족은 우리가 처음 언어를 배운 공간이자, 그 언어가 가장 자주 오해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부모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식은 통제로 듣고, 자식은 독립을 말하지만 부모는 거리두기로 받아들입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법으로 해석합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랑이란 말보다 행동으로 번역될 때 비로소 이해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같은 문장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전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말은 같지만 온도가 다르고, 의도는 선하지만 결과는 엇갈립니다. 관계의 균열은 언제나 단어 하나의 어감에서 시작됩니다. “괜찮아”라는 말이 부모에게는 위로의 신호이지만 자식에게는 무심한 방관처럼 들릴 때, 이미 마음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랑의 문장이 어긋나는 순간
부모의 말은 대체로 “너를 위해서”라는 단서로 시작합니다. 그 안에는 보호의 본능과 통제의 습관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반면 자식은 “내가 선택한 삶을 존중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응답합니다. 두 마음 모두 사랑의 다른 형태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조언은 '명령'이 되고, 자식의 표현은 '반항'으로 읽힙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사람은 자신이 들을 준비가 된 만큼만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한쪽은 경험을 근거로 말하고, 다른 한쪽은 감정을 근거로 말합니다. 경험은 과거를 참조하고 감정은 현재를 증언하기 때문에 시간의 방향이 다릅니다. 이 어긋남이 바로 사랑의 문장을 비틀어 놓습니다. 부모는 자신이 지나온 위험을 피하길 바라지만, 자식은 그 위험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결국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된 문장은 “그건 지금과 달라요”로 반박되며 대화는 평행선을 그립니다. 이 평행선 위에서 누구도 틀리지 않았지만, 누구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합니다.
3. 세대의 사전과 단어의 온도
부모 세대에게 책임은 ‘견디는 일’이었고, 자식 세대에게 책임은 ‘선택하는 일’입니다. 부모는 “참아야 한다”를 생존의 기술로 배웠고, 자식은 그것을 감정 억압의 신호로 읽습니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세계관의 축약”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말하는 성공은 사회적 안정의 다른 이름이고, 자식이 말하는 성공은 자기 서사의 완성입니다. 단어는 같지만 맥락이 다릅니다. 언어의 온도는 경험의 결로 결정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현실의 차가움을 알려주려 애쓰고, 자식은 아직 뜨거운 가능성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합니다. 어느 쪽의 언어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사전이 어떤 시대에 쓰였는가의 문제입니다.
언어는 시대를 품고, 세대는 시대를 기준으로 서로를 번역합니다. 문제는 그 번역이 종종 너무 서두르거나, 이미 완결된 결론처럼 들린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널 이해한다”는 말보다 “나는 아직 너의 사전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라는 문장이 훨씬 정직한 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4. 심리의 회로, 오해의 메커니즘
심리학에서는 이런 세대 간 대화를 ‘회귀적 관계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도 부모 앞에서는 다시 아이의 회로로 돌아갑니다.
칼 융은 “가장 깊은 관계는 언제나 무의식의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설명 대신 침묵이 먼저 나오고, 논리보다 감정이 앞섭니다. 반대로 부모는 자식 앞에서 여전히 지켜야 할 존재처럼 굳어 버립니다.
이때 대화는 과거의 감정이 현재의 말을 덮는 형태로 왜곡됩니다. “또 그런 말 하는구나”라는 반응은 실제 내용보다 기억된 감정이 먼저 떠올랐다는 신호입니다. 이해를 가로막는 것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기억의 잔향입니다.
그래서 관계의 회복은 논리의 설득이 아니라 감정의 업데이트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의 나로 말하고 지금의 너로 듣는 일, 그것이 회로를 새로 짜는 첫걸음입니다.
5. 말보다 먼저 조율해야 할 것들
대화는 언어로 이루어지지만, 언어 이전의 조건에서 이미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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