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마침표, 다시 시작될 빛의 문장>

동지(冬至), 새알심 속에 빚어 넣은 내일

by 숨결biroso나


​가장 긴 어둠의 정점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가장 뜨거운 붉음


​커다란 무쇠솥 안 뭉근히 일렁이는

어머니의 기도 같은 붉은 바다


동글게 몸을 만 새알심들은

우리가 지나온 시린 계절의 눈물일까

아니면, 조금씩 길어질 햇살일까


​입안 가득 번지는 묵직한 곡조의 온기

액운을 쫓는다는 붉은 빛깔은

얼어붙은 마음의 혈관을 깨우는 봄의 전령사


한 알, 두 알 삼켜내는 새알심마다

모나고 거칠었던 어제의 기억들

둥글게,

아주 동그랗게 깎여 나가는 고요


​가장 캄캄한 밤의 허기를

가장 환한 희망의 맛으로 채우는 한 그릇


비워낸 빈자리 위로

태양은 이미

우리 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한다.





​가장 낮은 천장에 닿았습니다
어둠이 뼈를 얻어 단단해지는 밤입니다.


​그림자가 제 몸을 다 펴서
세상의 밑줄을 긋는 동안
팥물 끓는 가마솥 안에는
수만 개의 해가 둥글게 익어갑니다.


​식어가는 계절의 틈새로
붉은 문장 하나 던져 넣으니
벽을 타고 흐르던 한기조차
비로소 제 갈 길을 찾아 잠이 듭니다.


​가장 캄캄한 잉크를 찍어
내일의 첫 문장을 적는 시간
우리는 지금 소멸이 아니라
빛의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


​이 긴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태양은 아주 조금씩
우리 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긴 밤을 빚어
가장 따스한 팥죽 한 그릇을 채웁니다
붉은 기운에 액운을 씻어내고
하얀 새알심 하나에
가슴속 묵혀둔 소망 하나를 보탭니다


​세상의 모든 빛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그림자가 발끝까지 길게 늘어져
마음의 구석진 곳까지 어둠이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의 씨앗이 얼마나 치열하게 움트고 있었는지


​동지는 끝이 아니라
내일로 건너가는 가장 낮은 문턱입니다
오늘의 침묵이 깊을수록
내일의 햇살은 조금 더 자라나고
우리의 시린 계절도
그만큼씩 봄을 향해 몸을 틉니다


이 긴 밤은 당신을 가두는 벽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품어주는 아늑한 요람이니
동그란 옹심이처럼 모나지 않은 마음으로
다시 차오를 태양을 기다려 봅니다


​비워낸 어둠의 자리마다
이제 곧 눈부신 햇살이 들이치겠지요
우리의 가장 깊은 밤이
가장 찬란한 아침으로 이어지는
기적의 통로가 되기를요.






동지(冬至)는 그렇게 우리에게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문장을 발견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팥죽 한 그릇의 붉은 온기가 혈관을 타고 흐르듯, 내일은 오늘보다 1분 더 길어진 햇살이 우리의 창가를 가장 먼저 찾아들 것입니다.


그 작은 빛의 선물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제 뿌리를 내리고 봄을 기다리는 당신의 고요한 인내에 대한 세상의 답가일 것입니다.



​이제, 긴 밤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한 해를 돌아봅니다.


팥죽 속 옹심이처럼 동글동글하게 녹아든 지난 기억들과,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에 대한 아련한 기대감. 이 모든 것을 품에 안고 우리는 조용히 기다립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이 더 빛나듯,

가장 혹독한 계절의 한가운데서


비로소 우리 안의 가장 선명한 빛을 발견하는 동지의 밤. 우리의 마음에도 따스한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동지는 어둠의 끝이 아니라 빛의 태동입니다.

가장 어두운 날,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따스한 봄볕이 시작되었으니까요.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세상은 잠들어도 팥죽 끓는 소리는 정겨운 온기로 남습니다.
​붉은 팥물 속에 녹아든 정성이 우리의 남은 겨울을 지키는 든든한 등불이 되기를요..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어제가 절기상 동지(冬至) 날이었지요.

동지(冬至)는 어둠이 극에 달한 순간에 이미 빛이 잉태되었음을 알리는 희망의 절기입니다.


새알심 하나를 씹으며 비로소 우리는 다시 한 살 분량의 용기를 얻어냅니다.
​가장 긴 그림자를 건너온 당신에게, 이제부터 시작될 눈부신 빛의 시간들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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