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마음의 궤적

사라지는 것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

by 숨결biroso나


사라지는 것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



낮과 밤의 사이에서
계절이
숨을 고르는 시간

길어진 그림자 끝에
붙잡히지 않는 것들이
조용히 풀려난다.

날아가는 새의 방향처럼
안개가 흩어지는 방식처럼

모든 떠남은
소리 없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나는 그 뒤를
쫓지 않는다.

다만
한 번 스쳐간 온기를
가만히
가슴 안쪽에 눌러 담는다.

사라진 것은
허공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나를 채우고 있었다.

물가에 서면
숨이 조금 낮아지고

어스름은
발끝에서부터
나를 조용히 감싼다.

이 고요 속에서
나는 알게 된다.

비워진 자리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음 마음이
들어오기 전까지
숨을 고르고 있는 자리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은
떠나가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들의 뒷모습이
내 안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 있으니까.


저무는 빛 끝에
아직 남아 있는
따뜻한 약속처럼

나는 지금도
조용히
계절을 지나고 있다.




춘분이 지나간 자리, 남겨진 마음의 궤적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즈음의 저녁은 유독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데리고 옵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 묵묵히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의 움직임이나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또한, 결코 멈춰 있는 법 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부지런히 생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떠나가는 것들을 보며 상실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들이 남기고 간 여운은 우리 마음의 빈 곳을 채우는 가장 내밀한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나 가로등 불빛 아래 고요하게 일렁이는 밤의 공기들. 이 평범하고도 찰나적인 풍경들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그리움이라는 온기가 더해질 때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무언가는 늘 우리 곁을 떠나지만, 그 궤적을 쫓아 눈동자에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풍경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가만히 숨을 고릅니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공기와 발끝에 닿는 어스름의 무게를 느끼며, 지금 이 순간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고요가 나를 어떻게 빚어가고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허공을 가르며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들이 남긴 빈자리는 결국 다시 새로운 계절과 새로운 마음으로 채워질 준비를 하는 귀한 여백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작별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들이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겠지요. 떠남은 끝이 아니라, 내 안의 풍경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다정한 초대장과 같습니다. 오늘도 저무는 풍경 속에 오롯이 서서, 내게로 불어오는 생의 숨결을 기쁘게 마주합니다.

떠나가는 것들의 뒷모습은 허공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고여 비로소 선명한 풍경이 된다.




저무는 해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는 붉은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내 손을 떠난 것들이 비로소 자유로운 날개를 펴고 날아오릅니다.


안개 속에 숨겨진 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떠나가는 새들도, 흩어지는 안개도 결국은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오늘도 글벗님들의 마음속에 고운 풍경 하나가 머물다 가기를 소망합니다.


《내 마음의 풍경》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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