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별을 지우는 아이
혹시, 아주 작디작은 마음이
누군가를 지켜야 했던 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니?
이번엔, 그런 소녀를 만났어.
별을 지우는 아이,
그날은… 품 안에서 빛을 보았어.
세 번째 이야기
슬픔을 쓰다듬는 법을 배워가는 밤.
밤에는 골목마다 이야기가 숨어든다.
울음은 벽을 타고, 속삭임은 창문 틈을 지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아이...봤어?”
"또 나타났대. 그 아이 말이야..."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밤마다 나타나는 아이.
말이 없고, 손끝에서 빛이 흐르는 아이.
누군가는 무섭다고, 누군가는 슬프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 아이의 마음은, 별처럼 조용하다는 것을.
그날 밤도 그랬다.
비가 머무른 골목, 저 멀리 벽돌 담장 아래
작은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소녀의 품 안엔 더 작고 연약한 아기가 있었다.
그 모습은 체념처럼 고요했다.
“괜찮니?”
나는 마른 바람처럼 조심히 말을 건넸다.
소녀는 말 대신, 두 손으로 품에 안긴 아기를 더 깊이 감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울타리처럼.
“여기, 혼자였니?”
“그 아이는… 네가 지켜주는 동생이구나?”
소녀는 겨울 끝자락처럼 조용히 숨을 내쉬더니,
작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움직임엔 말 대신 오래된 결심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아빠는… 이제 곁에 안 계셔.
엄마는 아프셔서, 오래 누워 계시고…
그래서 내가, 대신 안아.”
소녀의 말은 새털처럼 가벼웠지만,
그 품은 작은 어른처럼 단단했다.
그 말엔 힘이 없었다.
하지만 말 없는 어깨엔,
계절 몇 개쯤은 혼자 지나온 무게가 얹혀 있었다.
그 순간,
마치 내 가슴 속 오래된 상처 하나가
다시 숨 쉬는 것 같았다.
나는 소녀의 손등 위에 맺힌 물방울 하나를
마치 꽃잎 닦듯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러자 그 순간,
그 아이의 손끝에서 아주 작은 빛이 피어올랐다.
마치 밤하늘이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처럼.
하지만 이번엔
별이 되지 않았다.
그건 꽃잎 같은 무언가였다.
하늘이 아닌,
소녀의 품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그 빛은 꽃잎처럼 작고 부드럽게 퍼지더니
소녀의 품 안에 머물렀다.
나도 처음 보는 빛이었다.
울음 대신 피어난 따뜻한 온기.
그 빛은 머물렀다.
울지도, 날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작게, 아주 오래도록.
‘이건 별이 아니야.
이건... 누군가를 끝까지 지키는 슬픔이야.’
나는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작은 울음을 등에 업고
그 울음이 사라질 때까지
밤길을 함께 걸어주는 일인지도 몰라.”
나는 사람들의 슬픔을 별로 바꾸어 주는 아이야.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내 손끝의 빛이 별이 되지 않았어.
대신, 누군가의 품 안에서
아무 말 없이 피어난 무언가를 보았어.
바람도 숨죽인 채 바라볼 만큼 고요한 무엇.
그건 꼭 꽃잎 같았어.
작고, 따스하고,
살아 있는 숨결이 한 줌 모여 있는 것처럼.
그 소녀는 사랑보다 먼저 책임을 배운 아이였어.
이름도, 보호받을 권리도 다 잊힌 채,
품속에 작은 생명을 꼭 안고 있었지.
그 소녀가 지키고 있는 것은
동생 하나가 아니라,
자기 안에 남은 마지막 온기였어.
별이 되지 못한 슬픔은
그렇게 품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지키는 슬픔도 있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를 안고 또 누군가를 껴안는 존재.
별보다 눈물에 가까운 마음.
그것이 별이 되지 못한 밤에 피어난 꽃잎이다.
나는 처음으로,
별이 아닌 존재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별을 만들 때마다 잠시 멈추어 그 소녀를 떠올렸다.
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왜, 한 번도 안겨본 적이 없을까?”
한 번도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 밤,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슬픔에 내 그림자를 포개고 싶어졌다.
[별에게 하는 말]
오늘은 네가 오지 않았어.
하늘도 조용했고,
소녀의 마음도 닫혀 있었지.
그런데도....
그 품 안에서
뭔가가 피어났어.
별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오래도록 따뜻했어.
너도 그걸 본 적 있니?
[별 셋의 마음]
그 소녀는 아직 아이였다.
하지만 삶은 그녀를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들었다.
아기는 품었지만, 품에 안겨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모든 걸 버텼던 밤.
그 밤을 기억하는 나는
소녀에게 별 대신
‘기억’ 하나를 건넸다.
안긴 적 없는 아이들도,
언젠가는 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군가는 엄마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품고 살아간다.
어린 언니, 어린 오빠, 이웃, 친구,,,
작고 투명한 마음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언제나 반짝인다.
그것들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마음이다.
by 《별을 지우는 아이》 ⓒ biroso나.
그날 이후, 나는 또 한 사람을 만났다.
이번엔, 말없이 서 있는 노인이었다.
기억을 잃은 사람.
자신의 이름조차 더듬는 어두운 눈동자.
그 안에서 나는
또 하나의 별을 마주하려 한다.
4화. <노인의 잃어버린 이름>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숨결 감성 치유 동화] 슬픔을 별로 바꾸어 지워주는 아이의 이야기로 새 연재 시작했습니다.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당신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별을 지우는 아이》는 매주 월요일,
당신 마음에 조용히 별 하나를 놓아드립니다.
'별을 지우는 아이'는
슬픔을 별로 바꿔주는 작은 존재입니다.
혼자 울던 밤, 잊힌 이름,
닫힌 문 앞의 미안함.
그곳에 나타나 말없이 손끝을 얹고,
작은 마음을 빛으로 바꾸어줍니다.
별들의 이야기,
아이의 숨겨진 속마음,
그리고 별을 지우는 손끝의 비밀까지
조용히 전해드립니다.
세상에 남지 못한 마음들을
밤하늘로 올리는 이 작은 이야기들.
"매주 별을 하나씩 꺼내어 읽어주세요."
*<숨결로 쓰는 biroso나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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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엄마의 숨》
2) 월 《별을 지우는 아이》
3) 화/ 토 《78개의 마음》
4)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5) 수/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6) 목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7)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8) 일 《말없는 안부》
9) 목/ 일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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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지우는아이 #동화소설 #슬픔의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