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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모아 Oct 15. 2022

08. 또다시 비행기 탑승

타운즈빌 라이프 시작

드디어 타운즈빌 총 8주 트레이닝 중 첫 주가 시작되었다. 백수일 땐 그렇게 고팠던 ‘출근날‘인데 막상 일을 하려니 왜 이리 주말이 기다려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험난한 타운즈빌행 도착기


A타운을 출발하는 타운즈빌행 비행기가 월요일 이른 아침에 있어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일출을 보며 공항에 도착했다. 소피와 나는 나름 여유 있게 아침도 사 먹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우리보다 30분 늦게 출발하는 락햄튼(Rockhampton)행 동기들에게 작별인사까지 한 후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 짐과 공항 (노트북 가방이 검정가방 위에 놓여있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내 노트북 가방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 가방 안에는 내 여권, 내 모든 중요한 파일이 든 usb가 있어서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가방인데,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보니 게이트 옆 카페 의자에 두고 온 게 생각났다. 이륙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풀리자마자 승무원에게 분실물 관련 문의를 했더니 타운즈빌 도착 후 지상직 승무원에게 재문의를 해보라고 했다. 하늘에선 내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 넷플릭스를 보며 현실도피를 하다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콴타스(Qantas) 항공 카운터로 가서 재문의를 했다. 하지만  직원분 말에 의하면 내가 ‘항공기‘가 아닌 ’ 공항‘에서 물건을 잃어버린 거라 항공사가 도와줄 수 있는게 없단다. 당일(10월 3일)은 마침 공휴일이라 A타운 공항에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


어쩜 이리 덤벙대는 건지 나 스스로에게 화가 조금 났지만, 별수 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내 손을 떠난 가방인데. 마음이 좀 진정되자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물건을 잃어버리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비운만큼 채워지겠지’하는 기대감도 생기고, 지금까지 A타운에 온 후 모든 일들이 너무 완벽하게 풀려서 무서울 정도였는데, 이런 작은 불상사(hiccup)가 생기니 뭔가 밸런스가 맞아지는 것 같달까.




리조트에서 출근하는 간호사


타운즈빌 공항을 나와 첫 주에 묵게 될 호텔에 도착했다 (병원 옆 직원 숙소가 있었지만, 첫 주엔 예약이 꽉 차서 첫 일주일은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아무래도 ‘출장’ 중 묵는 숙소라 비즈니스 호텔을 기대했는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입구는 완전히 리조트 스타일의 호텔이었다. 게다가 야외풀, 리버뷰까지!

첫째 주에 묵은 호텔

팸투어에 온 관광청/여행사 직원도 아닌 ‘간호사’인데 리조트에 묵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트래블 널스의 묘미인가?




첫날부터 캐슬힐 룩아웃 등반


짐을 풀고 로스터를 보니 이번 주는 내내 0700-1530 근무였다. 그 말은 즉슨 금요일까지 아침시간을 활용할 수 없다는 것. 숙소 바로 코앞에 캐슬힐 (Castle Hill)이라는 높은 동산(사실상 산)이 있었는데, 주말이면 우린 병원 옆으로 이사를 가야 하니 오늘이 유일한 기회였다.


이미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한 상태라 살짝 피곤한 상태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늦기 전에 룩아웃에 가기로 했다.

호텔 근처에서 올려다본 캐슬힐 룩아웃
룩아웃 올라가는 입구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길도 꽤 완만하고,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경치가 멋있었다. 타운즈빌은 지금껏 가본 호주의 도시들에 비해 건물들은 낮은 반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체감상 구름이 훨씬 낮게 걸려있었다.

산행 중 보이는 하늘과 산

그런데, 중간 정도 올라가자 갑자기 ‘미친 경사’의 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혼자 오거나 강아지를 데려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거친 숨을 씩씩 내쉬면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나 또한 허벅지가 터질듯한 고통+짜릿함을 느끼며 정상을 향해 전력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실제로 보면 하늘로 올라가는 경사의 계단

정상에 도착해서 식수대에서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니 좀 살 것 같았다. 정상의 한쪽으론 바다와 매그내틱 아일랜드 (Magnetic Island)가 보였고, 다른 한쪽으론 타운즈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타운즈빌 시내 전경

바람을 충분히 쐰 후 산을 다시 내려오니 입구에 다달을 무렵 해가 지면서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쉴 틈 없이 3시간을 내리 걸어 숙소에 도착하니 눈에 보일 정도로 다리가 달달달 떨려왔다. 아침비행+하드코어 산행까지 타운즈빌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또다시 경력직들 사이 쭈구리


근육통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첫 출근날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첫 3일은 오리엔테이션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A타운 오티와 달리 타운즈빌 프로그램은 굉장히 체계적이었다.

오리엔테이션

30명가량의 병원 신입 직원들이 오티에 참석했는데, 소피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나이대도 꽤 높고, 타운즈빌 지역주민이거나 예전에 이곳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에듀케이터들도 나랑 소피가 ‘뉴그랫’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당연히 그냥 타 병원에서 트랜지션/업 스킬 교육을 받으러 온 걸로 알고 있었다. 소피와 나를 쌍수 들고 환영해주던 A타운 병원 직원들과 달리 이곳 병원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내가 말을 먼저 걸어도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와서 A타운에 고작 2주 있었지만 그곳 팀원들이 몹시나 그리웠다.




따듯한 병동 사람들


4일 차가 되어서야 오티를 끝내고 처음 병동에 가서 병동 에듀케이터와 NUM, 닥터와 팀 멤버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오티에서 봤던 경력직 널스들이 너무 퉁명스러워서 이미 내 몸은 학생 간호사처럼 잔뜩 불편함+긴장감으로 경직된 상태였다. 소피와 난 병동에 들어가서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에듀케이터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키가 크고 사복을 입은 여자분이 큰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너네 길 잃었니? (You look lost.)"


우리는 A타운에서 온 널스들이고 에듀케이터를 Tina를 찾고 있다고 하자 그분이 다짜고짜 “Follow me”라고 하더니 온 복도를 해 집고 다니면서 ”티티티“, ”티티티~나” 라며 노래를 부르는 거다. 나와 소피는 당황해서 서로 아이컨택을 주고받으며 그분을 계속 따라갔다.


우리가 찾던 에듀케이터는 마침 NUM, ANUM 등 우리가 만나야 하는 주요 인물들과 다 함께 탕비실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고, 우린 간략하게 서로 소개를 했다. 우리를 처음 따라오라고 했던 분은 놀랍게도 의사였다. 아직 살면서 그런 캐릭터의 의사를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신선했다.


그날은 간략하게 병동 소개와 프리셉터들을 만났는데, 오티 때 만났던 경력직 널스들과 달리 이 분들은 인상부터 완전히 달랐다. A타운 널스들처럼 진짜 다정하고 웃는 얼굴들이었고, 에듀케이터도 첫날 가장 강요했던 것이 “Be safe” 그리고 환자들의 자립을 위해 모든 걸 해주지 말 것(Don’t be a nuese maid)였다.


따듯한 병동 팀원들을 만나고 나니 이 병원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셀카




새 직원 숙소로 이사


드디어 호텔을 떠나 병원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직원 숙소로 이사를 했다. A타운에서는 내 숙소가 너무 멀어 소피와 킹 베드가 있는 룸 하나를 셰어 했어야 했는데, 이번엔 투베드룸 하우스를 받아서 훨씬 큰 공간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리넨도 갈아주시고, 모든 청소도구, 주방도구, 세제들도 구비되어 있다.




비치에서 첫 주말을


타운즈빌에서는 총 8번의 주말만 주어졌기 때문에 한 주라도 헛되이 보낼 수 없어서 이번 주말은 더 스트랜드(The Strand)라는 비치에서 보냈다.

더 스트랜드 풍경들

병원 근처와 달리 이쪽 동네는 팜트리도 많고, 언덕, 산, 강, 바다가 다 있어서 호주 같지 않은 이국적인 풍경이 종종 보였다. 특히 해안 북쪽 끝에는 작은 산책로가 있는데, 주말에 한 번씩 오기 좋아 보였다.


병동도, 타운즈빌도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다음 주가 몹시 기대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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